한국차의 위기에 대한 다양한 담론이 형성되지 않고 있다. 위기라는 말속에 현실을 타개하려는 집단적이고 인문학적인 노력이 담보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그같은 이유는 ‘뒷 담화는 활발하게 정당한 토론은 참여하지 않기와 내 견해만 옳다’고 생각하는 한국 차계의 고질병이 광범위하게 고착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본지는 한국차산업과 문화의 위기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보내온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이자 산절로야생다원 최성민 대표의 기고문을 싣는다. 본지는 이에 대한 다양한 반론를 기대한다. <편집자 주>

한국 차가 망하고 있는 현실은 이제 더 이상 숨길 수 없는 사실이어서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심각한 사정을 목전에 두고 한국 차계에서 아무도 그 심각성을 걱정하는 목소리를 내지 않고 있는 사실이 더욱 심각하게 느껴진다. 지난 9일 열린 한국차학회 춘계학술대회 주제와 논의 내용을 보자. 주제는 ‘세계 속의 한국차-한국 차 산업의 현안 및 활성화 방안’이어서 현재 한국 차가 처한 실정을 살펴보는 것 같다. 그러나 세부 논의 내용을 보면 중국 차 산업 현황 및 활성화 대책, 농약허용 품질관리, 한국 차 품질평가 기준, 경재력 제고 위한 자조금 도입 이해 등으로, 한국 차가 처한 위기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 및 적극적인 처방을 위한 고민은 보이지 않는다. 나는 한국 차 쇠망의 원인이 한국 차의 차별성을 구현할 수양다도에 대한 인식 부족 및 이에 따른 차향을 살리는 제다의 실패라고 보고 이에 관한 글을 이전에 이곳에 몇 차례 쓴 바 있다. 이런 맥락에서 보자면 한국차학회가 식품영양학과 전공자들을 위주로 한 이공계 학자들 및 형식적인 ‘다례’를 ‘다도’로 인식하고 있는 차 관계자들로 구성되어 있어서 한국 차 위기의 원인을 제대로 파악해 내지 못하고 있거나 심각성의 정도를 간과하고 있지 않나 생각한다.

색다른 차 개발 예산낭비 크다

한편 몇몇 차산지 지자체에서 한국 차 진흥을 위한 정책을 시행하고 있거나 일부 차인(제다인)들이 한국 차 위기 타개책으로 색다른 차를 만들어 내는 노력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들도 노력 그 자체는 살만하지만 초점이 잘못 맞춰져 있거나 첫 단추가 잘못 끼인 탓에 헛수고가 되거나 예산 낭비의 우려가 크다. 대개의 경우 지자체들은 대학연구소에 거금을 주고 ‘연구 결과’라는 명분을 취해 옛차를 복원하여 널리 선전하고자 한다. 사실 대학연구소라는 게 어떤 공인된 차 전문가를 두고 한국 차 현실에 관해 심도있는 연구를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런데 이른바 ‘대학연구소’의 연구 결과를 거쳐 ‘복원된’ 차는 한국 제다 발전사는 물론 세계 제다 발전사에 있어서 초기 또는 중기의 ‘조잡한’ 제다의 산물인 경우가 있다. 즉 이른바 ‘떡차’류는 9세기 당대唐代 육우陸羽가 『다경』을 쓰던 시절에 만들던 것이다. 그로부터 500년 후 명태조 주원장이 공물로 바치는 차(고급차)는 산차散茶로 만들도록 칙령을 정하여 오늘날의 덖음차로 제다법이 발전하게 되었다. 즉 덖음차(또는 증제 녹차) 제다 방식은 차의 자연성(본래성)을 살려내는 가장 발전된 제다방식이라는 것이다.

행정당국과 군민들이 합심하여 귀중한 옛것을 복원하여 조상의 혼을 잇고, 그 장점을 살려 새로이 산업화하겠다는 성의나 적극성은 칭찬하고 지지하여야 마땅하다. 그러나 ‘복원’의 참뜻과 복원의 가치를 시대적 흐름에 비추어 잘 파악해 내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이런 맥락에서 국내 제다인들이나 업체들이 녹차 제다 보다는 이른바 ‘황차’ 제다로 관심을 돌리고 있는 추세를 살펴봐야 한다. 국내 황차 제조는 중국 보이차 열풍의 영향과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중국 보이차는 덖음 녹차처럼 정성들여 제다된 고급차이냐가 문제이다. 보이차는 티벳이나 몽골 등 기름기 많이 먹고 채소가 부족한 극한대 북쪽 지방 사람들이 대용식품으로 먹기 위한 목적이 강하다. 먼 거리에서 한꺼번에 많이 가져다 장기간 쌓아놓고 먹고자 한 데서 변칙적 또는 부수적으로 생겨난 차 종류라고 할 수 있다. 나는 몇 해 전 운남 보이차 산지에 간 일이 있다. 매우 넓은 창고 같은 건물 시멘트 바닥에 보이차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 물을 뿌려서 마대 푸대를 덮어 삭히는 일을 되풀이하는 보이차 속성 과정을 보여주었다. 한국 황차(이를 발효차라고 오인해 부른다)를 만드는 사람들이 대부분 생 찻잎을 비벼서 비닐 자루에 넣어 뜨거운 방바닥에 이불로 덮어서 억지로 갈변시키는 일을 연상시켰다. 대부분의 한국 황차류가 시큼털털한 향과 맛을 내는 원인이 아닐까?

우리가 옛것의 복원이 중요하다고 하여 서울 암사동 아파트촌 옆 구석기 유적지에 구석기 움막집을 복원하여 거기서 살 수는 없는 일이다. 마찬가지로 한층 발전된 제다법의 녹차를 마시는 시대에 옛 유물에 비유될 수 있는 떡차류나 (제대로된 제다 과정을 거치지 않은)떡차성 황차류를 복원하여 음용할 필요가 있을지 의문이다. 녹차가 업 그레드된 차인 이유는 생 찻잎이 머금은 신선한 차향을 가장 잘 보전해낸 차류이기 때문이다. 차가 다른 음료수와 구별되는 가장 큰 차별성은 다도를 이루는 차의 속성, 곧 차향이다. 따라서 차는 곧 차향이고, 선인들의 다도 관련 글을 보면 차향은 다도를 이루는 핵심 기제임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현재 한국 차가 위기에 처한 근본적인 이유 또한 한국 녹차 가운데 차향을 제대로 내는 녹차가 드물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지적해 둔다.

한국차 위기 제대로된 녹차없기 때문

이런 의미에서 보자면 떡차류가 왜 폐기되고 녹차가 차의 주류가 되었는지도 생각해 봐야 하지만, 한국 녹차가 향을 제대로 내지 못해 차로서의 기능을 잃은 결과 다른 차가 나와야 할 상황이 초래됐다면 그 차는 차향을 제대로 내는 차여야 한다는 당위성이 따른다. 『조선의 차와 선』(모로오까 다모스·이에이리 가즈오 공저, 김명배 번역, 1991년, 도서출판 보림사)을 보면 “청태전은 찧어서 빚을 때 오갈피 또는 쑥을 넣는 일이 있지만, 맛이 없을 뿐만 아니라 맵다.”(218쪽), “ 청태전은 4,50년 전까지 보통의 음료로 제공되었으나 지금은 약으로 마신다는 것이다. 또 만들 때에 생강, 유자, 참죽나무의 잎 등을 넣고 만든다는 것이다.”(222쪽), “청태전에 대해서 물어보니, 이것은 5월 상순부터 15일 경까지 딴 차로 만든 것으로서, 병차(餠茶, 떡차)라고 해서 4, 5년 전까지 월하리 사람은 누구나 만들어서 마시기도 하고, 팔기도 하였는데 지금은 팔리지 않아서 중지하였다. 차 치고는 나쁜 것으로서 기차旗茶보다도 나쁘다....”(271쪽)는 대목이 나온다. 당시 청태전은 뒤에 ‘작설차’(일종의 녹차)로 자리를 넘겨준 것으로 기록돼 있다. 이런 기록을 보면 당시(오늘날의 청태전이 아닌) 청태전은 당대 이래의 떡차류에 속한 차였으며 미비점을 보완하기 위해 간혹 다른 약재를 섞어 약용으로 쓰기는 했으나 질 좋은 차로 인정되지는 못했던 것 같다.

음식은 소비자들의 기호에 민감하게 반응되어 금방 본바탕이 드러난다. 옛날의 청태전은 이미 당시의 소비자들에 의해 폐기된 차류였음을 알 수 있다. 위에서 말했듯이, 중국의 떡차류인 보이차의 생존 이유는 원래 그것이 티벳이나 몽골 등 특수 지역의 필요에 따른 ‘차향’ 외적인 것임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몇해전 부터 전남 장흥에서 청태전 복원사업을 해왔다. 장흥 청태전 사업의 성공 여부는 시행 기간이 어느 정도 경과한 지금 판별이 났으리라고 짐작된다. 그것은 청태전 사업 담당자들이 너무나 잘 알고 있을 것이다. 장흥 청태전 복원사업이 예전 청태전의 미비점을 보완하여 차의 핵심인 차향다운 차향을 차별성 있게 내는 차를 만들어 내는 제다법을 창안해 냈는지, 예전 청태전에서는 언급되지 않은 별난 효능이 있는 차를 만들어 내는지가 관건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청태전 복원’이 아니라 새로운 차류의 창조로서 한국 차문화사상 대단한 일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게 아니라면, 귀중한 예산을 낭비하고 순진한 차농들의 노력을 소진시키지 않기 위해 궤도수정이 필요하지 않은지 돌아볼 필요가 있다.

예전에 찧은 청태전에 오갈피나 쑥같은 약재를 넣어 약으로 마셨듯이, 부안의 ‘향차’도 그랬을 것이다. 최근 일부 제다인들이 예전의 차책茶書 『부풍향차보』 내용을 근거로 또 다른 ‘부풍향차’를 만들어낸 일이 있다. 부풍향차는 차에 예닐곱 가지 한약재를 넣은 것이다. 즉 차를 약으로 쓰던 인식의 산물이다. 각종 한·양약이 홍수를 이룬 오늘날 차를 단순히 약으로 쓸 일은 없어졌다. 즉 부풍 향차 역시 암사동 구석기시대 움막처럼 현대인들이 거주하기 보다는 박물관에 유물 자료로 보관할 대상이지 복원해 생활화할 일은 아니다. 차인들이 한국 차를 다양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 자체는 아름답다고 할 수 있지만 그 다향화의 목적이나 방향이 차 고유의 정체성을 얼마나 잘 이해하여 구현하고자 하느냐가 관건이다. 『대학』에 ‘物有本末 事有始終’이라 했다. 한국 차인들이나 제다인들이 한국 차 위기의 심각성을 인식하고 타개책을 마련하는 데 있어서 깊이 새겨야 할 말이라고 생각한다.

글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산절로야생다원대표 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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