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명차문화원 법진스님이 30여년 동안 자신이 체득한 제다에 관한 경험적 사실에 대한 글을 보내왔다. 우리가 차의 기준으로 삼고 있는 색.향.미에 대한 실천적 경험속에서 얻어진 소중한 제다법을 공개했다. 법진스님은 자신의 소중한 실제적 경험이 한국제다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취지에서 글을 보내왔다고 밝혔다. 이에 본지는 전문을 싣는다.<편집자 주>

차 맛을 내는 일에 맑고 부드러운 것은 당연히 중요하고 매우 당연한 일이다. 또한 향을 내는 일은 더 더욱 중요한 일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내가 만든 차향에 이런저런 뒷말이 많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몇 스님들께서 차 맛을 보시고 따로 전화를 해 주시기도 했다. 20년전 부석사 근일 큰 스님께서 "차 맛이 이렇게 좋은 차는 요 근간에 처음인데 아무리 주지한테 이 차를 사 달라 해도 다른 차를 사주네" 하고 전화를 걸어 오시기도 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절 만든 차는 부드럽기는 했으나 향은 지금에 비교하면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나의 차 만드는 실력의 한계를 느끼면서 우울해지기 까지 했다. 솔직히 차 솥 앞에 서는 일까지 두려웠다. 수많은 차 정보를 밝히는 지식층들이 발간하는 책 속에서 말 하는 < 색. 향. 미>를 찾아내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향을 구하면 원하는 색을 구 할 수가 없고, 맛을 찾으면 색과 향이 덜했다. 도대체 어디서 무엇을 찾아내야 하는 것인가. 분명 기계차 기준의 색향은 찾아 볼 수 가 없었다. 차에 대해 무지하기 짝이 없는 나에게 결정적으로 향을 찾아내는 동기가 있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했던가. 그해 나에게 차를 배우겠다고 젊은 두 남여가 함께 차 작업을 할 때였다. 봄 한철 한 달간 할 수 있는 경험적 연구로는 늘 갈증이 일었다. 봄 마다 새롭게 터득하고 배운 것을 이듬해가 되어야 실습을 하는 것을 몇 년 동안 반복 되는 차 공부는 너무도 어려운 일이었다. 그래서 해마다 차를 만드는 실력은 초보 수준이었다. 해도 해도 끝이 없는 새로운 발견들이 이어졌다.

어떻게 이것이 차의 맛이고 향이고 색이라고 결론을 낼 수 있을까. 그해 봄에도 향에 대한 갈증은 나를 힘들게 했고, 급기야는 차 작업 중에 엄청난 손실을 일으키고 말았다. 하루에 생잎 50kg를 열흘 넘게 해 놓은 차를 열기가 높은 차 솥에 넣고 가향 처리를 하겠다고 덤빈 최악의 순간을 만난 것이다. 깡마른 찻잎은 뜨거운 솥에 들어가는 순간 일시에 다 타 버렸던 것이다. 온도에 대한 정확한 데이터도 없이 막연하게 뜨겁게 하더라는 누구의 말을 듣고 행동한 나의 무지로 빚어진 일이었다. 스스로에게 일어나는 화를 못 억누르고 무조건 집을 나갔다. 차에 대한 책을 두 권 쓰고 차를 만드는 이웃 스님께 달려갔다. 그러나 그곳에서 나는 한마디도 얻을 수 있는 것은 없었다. 어렵게 찾아갔지만 아쉬운 속내를 보일수가 없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두 청년 앞에 뭐라고 해야 할지 몰라 매우 난감해 하고 있었다. 나의 가슴이 느끼는 차향, 나의 머리로 알고 있는 차향, 나의 손놀림으로 찾아내야 하는 차향이 참으로 어렵고 어려웠다. 누군가가 만들어 놓은 매뉴얼대로 따라 했다면 쉬웠을 일인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또한 내가 찾아 나선 향이 아니었기에 절망에 절망을 더 해갔다. 그 중에 다행한 일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봄 마다 내가 누구에게나 차 솥을 빌려줬던 인연 때문이다. 그 덕분에 다른 곳에서 많은 경험이 있었던 다양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공유를 할 수 있었다. 그 속에서 체득 할 것은 얻고 버릴 것은 버렸던 일도 차 연구에 큰 도움이 되었다. 많은 차를 태워먹은 그날 저녁 나는 오랜 지기에게 전화를 걸었다.

" 더 이상 차를 덖어 낼 수가 없을 것 같아. 내가 잘 난척 했던 차의 세계가 녹녹하지 않아 더 이상 자신이 없어."

" 이번 계기로 스님의 차가 업그레이드되려고 이런 일이 생긴 거야." 나는 그 위로의 말을 듣는 순간 기죽어 있던 자존심에 어디선가 빛이 들어오는 느낌을 받았다. 새벽녘까지 차 솥이 걸려 있는 바깥에서는 함께 작업 할 사람들은 내 눈치만 보고 있었고 나는 음악만 듣고 있었다. 물론 머리로는 차를 덖고 있었다. 아마 새벽 세시정도 되었을까, 뇌리 속으로 스쳐가는 섬광 같은 빛의 속도로 나는 시금치 국과 나물을 생각 해냈다. 시금치를 나물을 만들기 위해서 뜨거운 물에 데쳐내면 곧바로 한번 뒹굴려 끄집어내야만 향이 짙고 맛도 좋다. 또한 국을 끓였을 때는 한번 삶아낸 시금치를 식혀서 다시 뜨거운 물에 넣었을 때는 그 색이 그대로 살아있다. 대신 식히지 않고 그대로 미지근한 상태로 넣으면 초록은 사라지고 바래진다. 튀김을 만들 때 얼음물에 반죽을 하여 튀겨 냈을 때 재료의 색은 확연하게 살아 있다는 것을 생각 해낸 것이다. 뜨거운 솥에서 나온 잎을 차디차게 식혀 다시 뜨거운 솥에 넣으면 그대로 색이 살아있다.

가끔 텔레비전 화면에서 보는 호텔 식당 조리장에서 보여주는 요리를 만들 때 온도는 어마 무시한 불길에서 재빠른 손동작으로 음식을 만들어 내는 모습을 떠 올렸다. 내 생각은 적중했다. 불 온도와 손놀림은 내가 그토록 고민 해 온 < 색. 향. 미>를 다 해결 해주었다. 350도 이상으로 세 번을 덖어 내는 일이었다. 그 후의 불 온도는 따로 조절했다. 또한 그런 방법으로 완전 건조된 차를 향을 얻기 위해 두 시간 동안 다양한 불 온도를 적용 해가면서 마지막 차향을 얻어낸다. 여기서 사용하는 불온도 역시 100도에서 300도를 넘나들며 차향을 찾아낸다. 나는 이 불 온도를 <파도불> 이라고 이름 부쳐 놓았다. 파도처럼 시시 때때로 변화 무쌍하게 온도와 손놀림의 빠르기와 느리기를 반복하며 적용하기 때문이다. 우스갯소리로 “우리 작설차 외에 모든 차는 발가락으로도 만들 수 있다” 라고 표현하는 나에게도 덖음 차는 아직도 어렵고 힘들다. 그 만큼 차가 가지고 있는 본 성품의 조직이 예민하고 섬세하기 때문이다.

궁금한 것은 무엇이든 찾아내야 했었다. 어느 날 저녁 생잎 29kg 를 들고 구례 연곡사 계곡에 있던 석심원이라는 기계차 덖는 가내 공장을 찾았다. 주인을 설득하여 도움을 청해 기계에 대여섯 번 덖어내기를 반복하여 들고 와서 건조하여 마무리를 한 경험이 있다. 내가 손으로 여러 번 반복해서 덖은 차와 별 반 차이가 없을 만큼 차는 순하고 향도 좋고 맛은 부드러웠으나 색은 어쩔 수 없었다. 기계에 반복적으로 들락거려서 얻은 색은 한번 덖은 차 보다 뒤떨어져 있었다. 향을 찾아 에너지를 쏟은 일이 한가지였겠나. 수증기에 쪄 내기도 해보고, 끓는 물에 삶아 내 보기도 해보고, 한번 덖어서 완성을 시켜 보기도 하고, 아홉 번을 덖어 완성 시켜 보기도 해보고, 어쨌거나 내가 아는 차는 세 번은 꼭 덖어야 하고, 네 번 부터는 찬 공기를 쏘여주는 역할만 하고, 반복으로 예닐곱 번을 솥과 바깥을 들락거리다가 완전 건조되면 두 시간을 꼬박 파도불을 사용하면서 완성을 시킨다. 마지막 처리에서는 가스 밸브를 세 개다 열어 놓고, 코를 솥에 깊숙이 쳐박고, 동물적인 후각으로 마지막 차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향을 묻고 답하여 재빠르게 끄집어낸다. 자칫 하면 이 순간 차는 완전 망치는 것이다.

낭만적인 성품인 나는 어릴 적 해질녘 아버지를 따라 피라미 잡이 따라 나선 적이 많다. 해가 지면 피라미떼 들이 집 앞 시냇가에 몰려든다. 아버지의 발걸음은 살금살금 손놀림은 재빠르게, 투망을 낙하산처럼 풀어 던 진후 재빠른 손놀림으로 투망 줄을 당기는 모습을 나는 차를 끄집어 낼 때 마다 떠 올린다. 차는 나에게 아버지를 그리게 하고, 추억을 떠 올리게 하며, 은박지에 포장을 할때 마다 아버지의 투망에 걸려 든 연어떼와 피래미를 떠 올리게한다. 차는 나에게 禪이요. 중용과 중도 사상을 가르쳐 준 스승이며, 차는 나에게 동심이며, 아버지와 함께 한 추억이기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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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명차문화원 법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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