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차의 발전은 좋은 차를 만드는 제다법에 의해 결정된다. 인터넷 일간 신문 <차와문화>는 한국차산업의 발전을 위해 제다법에 대한 건강한 논쟁을 시작한다. 그리고 조만간 대중들과 함께하는 공개품평대회를 가질 예정이다. 지난 5월 5일 중앙일보 중앙선데이에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박동춘 이사장의 한국 녹차 제다법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이후 백운명차문화원 법진스님이 첫 번째 두 번째 편지를 보내왔고 박동춘 이사장이 특별기고문을 보내왔다. 이같은 지면토론에 대해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최성민 소장 기고문을 보내왔다. 최소장의 기고문에 법진스님이 3번째 편지를 보내왔다. 이에 전문을 싣는다. 이에 대한 다양한 반론도 환영한다. <편집자주>

지식으로 아는 것과 실기로 얻은 지혜로움은 격이 다르다. 표현의 기술이 뛰어난 것과 표현이 서툴더라도 진정성을 담아 하는 표현 하는 것은 그 결이 다르게 와 닿는다.

올해 내가 사는 광양 다압 농협에 차 공장은 차를 한통도 만들지 않았다고 했다. 정확한 이유를 알 수 없으나 가는 곳 마다 차와 차를 마시는 도자기를 생산하는 사람들은 하나같이 힘들어 생활하기 어렵다고 아우성이다. 차를 찾는 사람도 드물고, 찻그릇을 찾는 사람도 많이 줄었다고 했다. 이러한 소리는 어제 오늘 일은 아니다.

4-5년전 하동의 어느 차 농가의 할아버지의 말씀은 "전에는 채 밑에 빠진 차(가루)도 없어서 못 팔았어요." 그런 시절이 있었다. 우리차가 대대적으로 홍보되어 온 국민이 무슨 만병통치제라도 되는 양 우리나라 작설차를 찾았다. 2000년대 초 부터 갑자기 화개고을에 우후죽순처럼 대형 차 공장이 들어서기 시작 할 무렵이었다. 차는 향이 짙은 기계차와 농가에서 할머니들이 손수 만든 수제차가 동시에 등장 하던 시절이었던것 같다.

차를 마시려고 하는 사람들은 무작정 차를 마시려고 하기보다 전문서적이나 뉴스 매체를 통해서 차를 배워 가기 시작한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당시 차를 지금처럼 남들보다 더 알고 더 많은 경험이 있었던 시절이 아니었음에도 차를 덖는다는 이유로 전국에서 이런저런 차에 관련 된 사람들이 많이 찾아왔다. 특히 여러 차문화 단체에서 많이 찾아왔다. 교육에서 배운 이론을 실전에서 찾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차 맛을 평가하는 태도는 형편없었다. 차를 제대로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차문화 단체에서 공부했다는 우월감을 과시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나는 이름 없는 제다인이요 당신들은 유명한 차문화 단체의 회원들이란 우월감으로 내가 만든 차의 맛에 대한 품평을 제멋대로 했다. 과거와 현재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사단법인 백운명차문화원 현판이 하나 걸려있다는 것이다. 그 현판이 걸린 후 나에게 시시비비를 걸어온 사람이 단 한명도 없었다. 그렇다 사람들은 좋은 차를 제대로 알고 마시려고 하지 않고 간판을 차의 실력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많이 아쉬운 대목이다.

어제 일간 인터넷 신문 <차와문화>에 기고한 나의 공개편지를 보고 어느 분이 글을 게재했다. 그분 역시 내가 쓴 글을 제대로 파악을 하지 못한 듯 하다. 나는 두번의 공개편지에서 단 한번도 구증구포를 내 세운적도 없고 또한 다도에 대한 글을 단 한 줄도 쓴 적이 없다. 나의 근본은 수행자다. 그런 이유로 인해 차를 마시는 일에 대해서는 특히 홀로 마실 때 엄격하게 마시라고 권하는 사람이다. 2003년부터 차를 마시는 일을 통해서 마음을 다스리자는 슬로건을 내 걸고 크고 작은 차 모임을 주관 해 온 사람이다. 그런 내가 다도를 무시 했겠는가. 공개편지 내용을 다시 한번 읽어 보시고 잘 숙지 해주시기를 부탁 드리는 바다.

또한 그분이 쓴 내용 중에 차는 향이 좌우한다는 대목에서 나의 소견을 전해본다. 물론 잘못 전달되면 내 자랑이 될 말이다. 언젠가 봄 팔공산에 계시는 80이 넘은 노스님이 내가 보내 드린 차를 마신 후 전화를 걸어왔다.

"요즘도 이런 차를 만드는 사람이 있냐, 차 맛이 바다와 같다."

나는 당시 내가 만드는 차 맛이 다른 시중에 나오는 대중적인 차 맛에 비해 분명 <색. 향. 미> 가 뒤떨어져 있고 부족 한 것에 대하여 몰두하여 차를 연구 하는 입장이었다. 제다계 전반에 걸쳐서 차의 진수는 <색色. 향香.미味>에 있다고 주장을 따라가지 못한 나의 차에 대해 몹시 불만족이 있었던 시기였다. 그런데 노스님께 극찬을 받은 것이다. 또 당시 많은 사람들이 내가 만든 차가 시중 차보다 싱겁다는 표현을 했다. 차를 무작정 덖기만 했지 차에 대해 무지한 나도 <싱겁다> 와 < 부드럽다>와 < 순하다> 에 대하여 혼란이 있었던 시기였다. 그러던 중 너무 다양한 정보들이 오히려 차 연구에 혼란만 주는것 같아 차 덖는 일에 미쳐서 사는 나는 시중의 차 맛에도, 시중에 떠도는 차에 대한 지식과 홍보에도 눈 감고 귀를 덮고 살았다. 오로지 채식위주의 식 생활을 하는 스님들로 부터 외면받지 않는 우리 작설차를 만들어야겠다는 일념으로 차를 덖었다. 불 온도와 손놀림의 강약은 차 맛을 내는 것에 전부다 라고 할수 있다. 또한 속까지 잘 익혀야만 되는 일은 당연하나, 향을 잃을까봐 섣불리 익힌 차를 끄집어 내는 타이밍은 찰나의 판단이다. 지리산과 섬진강 주변에서 나름 차를 잘 덖고 경력이 많은 몇몇 사람들과 함께 차를 덖는 일이 두 세번 정도 있었다. 그럴 때 마다 그들과 첫 솥 익힘의 타이밍 때문에 실랑이를 했었다. 그들과 내가 끄집어 내는 시간의 판단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들이 타인의 손을 빌리지 않고 만들었던 차는 분명 내가 만든 차보다 향이 짙고 좋았다. 하지만 속을 훑는 것은 맑은 물이 우려 나오도록 마셔 보면 알 수 있는 일이었다.

차의 향에 대해서 한번 논의해보자. 사람들이 주장하는 향이라는 것에 대하여 어느 정도의 향이 진정한 향인지 논의해보고 싶다. 오늘날 그 누구도 맏아 본 적 없었던 초의선사가 언급했던 향을 어떻게 증명 할 것인가, 분명 훅 하고 다가오는 가벼운 향은 아니라고 하는 판단이다. 깊고 은은한 향 일 것라는 나만의 판단이다. 바다와 같은 넓고 깊은 차향...

내가 처음 공개편지를 쓴 것에 대한 것은 우리 덖음차의 현 주소를 안타까워함이요. 모두가 힘든 처지에 니편 내편을 가르자는 의미로 들리는 글이 안타깝다. 또한 공개 편지가 엉뚱하게 다도를 무시하는 것으로 읽힌 점은 아쉽다. 차를 즐기는 대중들에게 우리차를 선호 해 달라는 간절한 호소에서 비롯 된 것이다. 또 하나 부탁하고자 하는 것이 있다. 한국 차단체에서 다도 공부를 하는 사람들이 나름 차 덖는 것을 현장에서 배운다. 체험하는 것은 좋다. 그러나 차농들의 노고를 이해하는 수준을 넘어가고 있다. 봄마다 자신들이 마실 차를 비롯해 이웃에게까지 하는 선물용 차까지 만들어간다. 우리차의 주요 소비층은 차문화단체에서 다도공부를 한 사람들이다. 주 소비층이 체험장에서 한해 마실 우리차를 만들어가고 그것도 부족해 선물까지 하니 우리차가 소비량을 점점 줄어갈 수 밖에 없다. 그런 차문화단체 회원들의 행태는 오랫동안 차 농사를 지어온 농민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간다면 이른바 차인이라는 이름의 덕목을 갖추지 못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이렇게 변명한다. “차를 제대로 잘 덖는 사람이 없어서 직접 만들어 간다.” 평생 제다를 해온 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인 말이다. 나는 묻고 싶다. 제대로 차값을 치루는데 누가 차를 함부로 만들수 있을까, 제대로 값을 치러 주는 것부터 좋은 차를 마실 수 있는 자격을 갖췄다고 말 해 주고 싶다.

차를 즐겨 마시라고 외치는 것은 다도를 강요하는 일도 아니오. 차 맛을 품평 하라는 것도 아니요. 내가 만든 차가 최고라고 내 세울 일도 아니다. 왜 차를 즐겨 마시라고 권하는지는 차 생활을 꾸준히 하다보면 그 안에 답을 얻고 답이 보인다. 대한민국 온 국민이 하루에 세번 이상 찻자리에 앉아 보기를 권해본다. 가능한 우리나라 농산물로 만든 우리차를 ...

글 백운명차문화원 원장 법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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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명차문화원 법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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