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5일 중앙일보 중앙선데이에 동아시아차문화연구소 박동춘 이사장의 한국 녹차 제다법에 대한 기사가 실렸다. 이후 백운명차문화원 법진스님이 첫 번째 두 번째 편지를 보내왔고 박동춘 이사장이 특별기고문을 보내왔다. 이같은 지면토론에 대해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최성민 소장 기고문을 보내왔다. 이에 전문을 싣는다. 이에 대한 다양한 반론도 환영한다. <편집자주>

한창 차를 만드는 와중에 박동춘-법진 두 분의 제다에 관한 토론을 관심 있게 보았다. 우선 토론이 전무하고 무모하거나 설익은 독불장군들만이 판치는 한국 차계에서 모처럼 두 차인이 제다, 특히 구증구포에 관한 문제제기와 논박을 했다는 사실은 한국 차와 차문화 발전을 위해 매우 고무적인 일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 토론이 학술적인 탐구와 구체적인 실천 경험이 아우러진 건강성으로 결말에 이르지 못하고, 감정적인 표현 및 중도 무산 조짐이 보인 것은 옥의 티다. 두 분의 토론을 격려하고 이런 류의 토론이 어떤 형태로든 지속 또는 재발화되기를 바라는 소망으로 ‘한국 차의 심각한 문제’와 ‘한국 차 부활책’에 관한 소견을 적는다.

누구나 잘 아는 바와 같이, 그리고 여러 통계가 말해주는 것처럼, 한국 차는 지난 2007년 이른바 ‘농약파동’ 이후 망해가고 있다. 그 자리를 커피와 보이차가 휩쓸고 있다. 최근 보이차와 커피에 발암물질이 있다는 경고로도 사정이 바뀌지 않을 기색이다. 그런데 한국 차 위기의 원인이 농약파동이나 커피 열풍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차인들이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 더 심각하다. 한국의 차인들은 연구나 개선의 고민을 하지 않고 무턱대고 기존의 관행을 따르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내가 지면을 통해(그리고 논문 ⌜한국 수양다도의 모색⌟을 통해) 수 차례 말해왔듯이, 한국 차 위기의 원인은 한국 차인들이 타 음료수에 대한 차의 차별성 및 제다의 중요성(또는 차향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 있다.

우선 차를 다른 기호음료수와 동등한 반열에 놓는 게 문제이다. 향이 은근하고 심오하여 자연의 기氣를 온전히 전해주는 한국의 녹차로써 대중을 즉각적이고 말초적으로 유인하는 데 있어서 향이 자극적인 커피나 보이차와 겨룰 생각을 하는 것은 넌센스 중의 넌센스이다. 음료수 중에 차에만 도道자가 붙은 ‘다도’가 있다는 사실을 왜 중시하지 않는가? 일본 그린티가 국제적인 브랜드가 된 것은 스티브 잡스도 몰입했다는 ‘일본 다도’라는 차문화가 기반이 되었기 때문이다. 요즘 한국에도 다도는 있다. 그러나 옷을 잘 입고 여럿이 앉아서 ‘사범’이 내려주는 차를 무턱대고 나누는 다도는 낮은 단계의 다도 또는 다법에 불과하지 진정한 다도는 아니다. 또 법진님 말씀처럼 다도는 하늘의 이치일진대 누가 사범 자격을 부여하고 그 과정에 돈이 오갈 수 있는 일인가? 초의가 ⌜동다송⌟에 소개했듯이 그것은 ‘다법’이고 그것도 혼자 마시는 차일 때만 ‘독철왈신’獨啜曰神, 즉 자연의 기와 통하는 신통력을 얻는 도의 단계라고 할 수 있다.

다도에서 가장 중요한 기능을 하는 것은 차향이다. 동양철학은 일찍이 기론氣論으로써 수양론의 터를 닦았다. 기론에 의한 수양론은 ‘⌜관자⌟ 4편’에 이론이 정립돼 있고, ⌜장자⌟에서 각 가지 우화寓話로써 상세히 설명되고 있다. 육우가 ⌜다경⌟ 첫머리에서 말한 ‘미지한味至寒’도 차의 기를 말한 것인데 차인들이 이를 ‘차는 맛이 차다’라고 오역을 하여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차향은 차의 기를 대표한다. 그래서 향기香氣라고 한다. 차향은 우주의 청신한 기氣로서 우리 몸에 들어와 심신을 정화하고 자연합일을 매개한다는 것이 다도의 원리이다. 이런 원리는 유명한 노동의 ⌜칠완다가⌟ 이후 당·송대 중국 문사다도가들과 고려·조선 문사 차인들의 싯구에서, 그리고 한제 이목의 ⌜다부⌟와 초의선사의 ⌜동다송⌟을 정성들여 읽어보면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불가에서도 ‘불국토’를 ‘중향계’衆香界라 하여 향을 득도의 매개체로 삼고 있다. ‘다선일미’라는 말은 차의 향기가 나의 심신에 다가옴이 선을 할 때 심신이 정화되는 것과 같다는 뜻이다. 송나라 시인이 썼다고 하고 추사가 서예로 옮긴 ‘정좌처다반향초, 묘용시수류화개’ 역시 차향을 매개로한 유가儒家의 미발·이발시 수양을 묘사한 것이다.

초의가 ⌜다록⌟을 베껴쓰면서 책제목을 ⌜다신전⌟이라고 한 것은 ‘다신’茶神, 즉 차의 향을 중시한 초의의 독창적 발상이다. 신神은 기氣가 고도화, 활성화되어 신통력을 갖는 단계에 이른 것이라고 ⌜주역⌟ 등 동양철학 고전에 나와 있다. 또 초의가 ⌜동다송⌟에서 더욱 정제된 창의력을 발휘하여 규정하였고 현재 한국 차인들이 ‘한국 다도’ 또는 ‘한국 다도정신’의 원전으로 삼는 ‘채진기묘, 조진기정, 수득기진, 포득기중’은 한 마디로 ‘찻잎을 딸 때부터 차향의 신묘함과 정기를 잘 보전하여 좋은 물을 골라 적정량(中)의 차를 넣어 차탕에 자연의 기운인 차향이 정상적으로正으로 발현되게 하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왜 차탕에 차향이 정상적으로 발현되어야 하는가? 차를 마셨을 때 차향이 우리 심신에 전이돼 정화작용을 하여 자연합일의 득도를 돕기 때문이다. 그것이 진정한 다도의 의미가 해석된 ‘한국 수양다도‘이다. 그러고 보면 한국의 ‘다도정신’은 상태를 형용하는 ‘중정’이라기 보다는 그 중정을 이루어내는 마음인 ‘성’誠이어야 한다.

다도와 더불어 차에서 향이 이토록 중요하다는 사실은 또한 제다의 중요성으로 이어진다. 초의의 다도 규정에서 ‘채진기묘-조진기정’이 향의 보전을 위한 제다의 중요성이다. 초의는 다신전과 동다송에서 차의 향 네 가지(진향, 순향, 청향, 난향)를 소개하고 있다. 진향 외에는 모두 불조절이 관건이다. 초의가 동다송을 쓴 8년 뒤에도 추사는 초의에게 불조절을 조심하라는 조언의 편지를 보냈다. 그래도 안돼서인지 추사 동생 김명희는 중국의 다서에서 뽑은 ‘다법수칙’을 초의의 제자 향훈에게 소개했다. ‘차향을 잘 보전하기 위해서는 약한 불에서부터 서서히 불의 세기를 더하여 반쯤 익어서 꺼내라’는 것이다. 향은 불에 약하기 때문에 당연한 이치이다. 여기에서 소위 ‘구증구포’가 얼마나 차향의 중요성에 무지 무모한 제다법인지 알 수 있다. ‘구증구포’라는 말은 박동춘님 말씀처럼 이유원의 시에 나오고 다산이 강진 시절 떡차를 만들면서 자신의 약한 위장을 생각하여 차의 센 기운을 덜어내기 위한 방법으로 잠시 채택했었다. 말하자면 차향으로 상징되는 차의 기운을 약하게 하자는 것이다. 차의 경쟁력과 차별성이 다른 음료수가 갖추지 못한 ‘다도’라는 각별한 문화에 있고, 다도는 자연의 청신한 기운인 ‘차향’이 관건임을 초의의 동다송을 비롯한 여러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는 차인이라면 더 이상 ‘구증구포’를 입에 올려서는 안된다.

한국의 차인, 특히 수제차를 만드는 차농과 제다인들이 차의 차별성이 다도를 이루는 차향임을 인식하고 자연의 차향을 최대한 보전하여 차탕에 발현시키는 차를 만들고자 노력함으로써 한국의 차가 서구의 자극적이고 공격적이고 자연파괴적인 음료수나 중국의 티벳과 몽골 등 채소 부족 지역에서 대안으로 마시는 ‘썩은 새’ 냄새나는 조잡한 차를 일거에 물리치는 부활의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글 (사)남도정통제다·다도보존연구소 소장, 곡성 산절로야생다원 대표 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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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정통제다. 다도보존연구소 최성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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