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이 생일이었거든요. 생일선물로 아내에게 일본여행을 혼자 보내달라고 졸랐지요. 그렇게 저에게 주어진 3일간의 자유시간. 늘 가족들과 함께 자주 일본을 다녀왔지만, 혼자서는 제대로 가본 적이 별로 없기도 했고, 일본의 시골풍경을 좋아하는 저는 망설임 없이 교토행을 결정했습니다.

일단 계획은 심플했어요. 기요미즈데라(청수사) 아랫동네인 기온에서 하루, 녹차마을로 유명한 우지에서 하루를 더 묵는 거였죠. 일본은 절도 재밌지만 골동품 거리가 참 많거든요. 하루는 골동품을 실컷보고 하루는 차를 실컷 봐야지! 하는 나름 야심찬 계획이었는데 결과적으로 골동품은 많이 못 봤고 절 구경만 실컷 했습니다.

사진이 좀 많아요. 동네가 너무 예뻐서 눈에 담고 카메라에 담고 욕심을 내다보니 정리한다고 했는데도 좀 많아졌습니다. 같이 여행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봐주시면 좋겠고 교토여행 준비하고 계신다면 작은 도움이 되길 바랍니다.

첫날 오후 비행기로 느즈막히 교토에 도착. 숙소는 혼자 가는 여행이라 부킹닷컴에서 대충 아무거나 골랐어요. 이미 어두워져 보이지도 않는 골목 어딘가에 별 생각없이 내렸는데...

고급스러운 조명아래 기모노를 차려입은 직원분이 나와 반겨주시더군요. 대충 잠만 자야지 했던 저는 너무 좋은 호텔 분위기에 깜짝 놀랐습니다. 얼떨결에 걸린 숙소 자랑은 조금 이따 다시 하기로 하고...

배가 고파서 번화가를 찾아 나섰다가 숯불로 구운 떡꼬치 같은 것을 팔길래 가볍게 허기를 채우고 잠이 들었습니다. 2박 3일중 하루는 이동하느라 다 보낸 셈이라. 내일은 새벽부터 일어나 알차게 놀겠다는 굳은 다짐을 하면서요. 둘째날 이른 새벽에 일어나 청수사로 향했지요. 아무도 없는 새벽녘의 니넨자카의 계단길. 고즈넉하고 차분한 이 거리를 혼자서 걷던 그 순간이 정말 너무나 좋았어요. 니넨자카 계단에서 넘어지면 3년 안에 죽는다는 속설이 자꾸 떠올라 나도 모르게 조심조심 걷게 되는 거리지만요.

낮에는 사람도 많고 볼거리도 넘치는 곳이지만 아무도 없는 새벽의 니넨자카 산넨자카의 구석구석을 혼자 차지하는 기분이 얼마나 매력적인지 한번쯤은 꼭 경험해보시길 바래요. 북적이는 사람들과 화려한 상품들에 가려 미처 보지 못했던 작은 골목들 그 조용한 아름다움에 새삼 반하시게 될 겁니다. 표를 한 장 끊어서 청수사에 입장해봅니다. 계절마다 바뀌는 청수사의 풍경에 맞춰 티켓 디자인도 바뀐다고 하죠. 본당으로 들어가 저 뒤쪽으로 병풍처럼 펼쳐진 산새가 너무 근사합니다. 저 끝까지는 힘들어서 못갔어요.

본당에 들어가 참배도 하고 종도치고... 그렇게 잠시 마음을 가다듬은 후 나와서 주변을 살펴보니. 아래쪽으로 오토와노타키가 보입니다. 오토와 산중에서 나오는 샘물로 지붕에서 흘러나오는 3개의 물줄기가 장수, 학업, 사랑을 이루는 효력이 있다고 하는데요. 길다란 표주박으로 그냥 물을 받으면 된다기에 저 물을 병에 한가득 담아가서 차를 한잔 마셔야 겠다 싶었거든요. 그런데 그때 마침 어떤 아저씨가 한쪽 다리를 난간에 걸치고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물을 병에 담는 모습을 봤는데. 그 모습이 어찌나 위험해보이던지 저는 도저히 엄두가 안나더군요. 그냥 길다란 컵으로 한잔 마시고 말았어요. 정원옆에 넓은 묘지터가 있는데, 묘지가 무수히 많이 모여있

으니 이것도 하나의 그림이 됩니다. 청수사 사진이나 관람기는 다른 포스팅에서도 많이 보실 수 있으니 이쯤에서 요약하도록 할께요. 청수사를 뒤로하고 나온 이거리가 알고보니 차 거리더군요. 아직 문 연곳이 많지 않아 꼼꼼히 보지는 못했고요. 한참 내려오다가 이 건물은 또 뭐지 했는데 제자 어제 묵었던 그 호텔이었어요. 택시로 밤에와서 어떻게 생긴지도 모르고 들어왔거든요.

저번에 료칸 여행을 다녀온 이후로 일본에 숙소를 정할 때 한가지 저만의 원칙이 생겼어요. 꼭 대중탕이 있는 호텔에 묵자는 거였죠. 아담한 대중탕이었지만 더할 나위없이 충분했습니다.

평일아침 기온거리의 풍경은 우리네와 크게 달라보이지 않습니다. 아침부터 마트에 장보러 나온 동네 주민들의 모습이 정겨웠어요. 빈티지한 느낌이 물씬 풍기는 골목 골목도 너무 예쁘죠. 차도구들과 도자기를 파는 가게들도 종종 있는데 제 취향은 아니라 유심히 살펴보진 않았어요. 이름난 골동품점이 있다길래 일부러 찾아갔는데 진품은 없더라구요. 주인장 말로는 오리지널 앤틱 스타일이라는데... 스타일이라는 말이 붙은 걸 보니 진짜 앤틱은 아니라는 뜻이겠죠. 모르는 사람이 보면 깜박 속겠어요.

말이 2박 3일이지 첫날 저녁에 도착해서 마지막날 점심때 떠나야 하는 일정이라 오늘 하루를 어떻게든 꽉차게 보내야 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했어요. 기온 사조역에서 다음 행선지인 우지로 향하는 기차를 탔는데 딱 30분 걸리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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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형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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