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연작에서의 성찰은 그동안 고은 시인이 추구해 왔던 것과 비슷하지만, 노년의 삶에 대한 허무 의식과 시에 대한 원숙한 의식을 전경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다소 차이가 있다. 또한 「어느 날」에는 여전히 오늘날 우리 사회가 지닌 문제점과 부면들에 대한 통찰과 관련되는 비판과 저항 정신이 번뜩인다. 다만 통찰이나 비판의 대상이 반민주주의 사회에서 비인간적 사회, 디지털 자본주의 사회, 배타주의적 편견 사회등으로 확장되고 있다는 점은 이전과 다른 모습이다. 요컨대 「어느 날」은 미수(米壽)를 앞둔 노시인의 원숙하고 노련한 시적 상상이 돋보이는 연작시이다.

‘어느 날’은 부정확하거나 막연한 시간이라는 지시적 의미를 넘어, 연속성과 다양성을 향해 열려있는 무한 가능성의 시간이라는 상징적 의미를 간직한다. 즉 ‘어느 날’은 한 순간의 단편적인 시간이 아니라 모든 순간들을 포괄하는 일체적 시간으로서, ‘순간이 곧 영원’이라고 할 때처럼 다양한 ‘순간’들을 모두 함의하는 것이다. 따라서 ‘어느 날’은 인생의 모든 시간, 우주의 모든 시간을 표상하는 무궁의 시간이자, 현실의 편견과 아집을 벗어버린 자유의 시간, 시의 시간이다. 이 시집이 장식하는 고은이라는 문학사의 한 페이지는, 제사(題詞)의 표현을 빌리면 그런 “어느 날”에 만난 “이 세상 구석구석/ 벅찬 감동”의 기록이다(이형권 문학평론가). 발견. 12,000원

SNS 기사보내기
이능화 기자
저작권자 © 뉴스 차와문화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