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자완에서부터 청자향로까지 우리청자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는 특별전이 열린다. 이화여자대학교박물관(관장 장남원)은 오는 9월 18일부터 12월 30일까지 《청자》 소장품 특별전을 준비했다. 《청자》전에서는 고려시대 무문청자를 비롯하여 음각, 양각, 철화, 상감, 상형, 투각 등 고려를 대표하는 여러 장식기법과 기종을 망라한 소장품 200여점이 소개된다. 또한 고려의 전통을 재현한 근대기 청자와 한국 도예교육의 산실이었던 이화여대 도예연구소 제작품의 일부도 선보인다.
1실 음다飮茶와 음주飮酒
차 문화의 유행과 술 같은 음료의 발달은 청자 발달을 견인한 중요한 요인이었다. 선종禪宗과 다선茶禪의 유행은 중국산 다완茶碗 수입에 이어 국내의 청자 제작을 촉발시키는 계기가 되었다. 사찰과 왕실에서는 차를 수양과 각종 행사의 필수 품목으로 취급하여 국가행사에서 진다의례進茶儀禮를 행했다. 고려 왕실에는 조정의 다례를 거행하는 ‘다방茶房’이라는 기구가 있었고, 수도 개경에는 차를 마시는 ‘다점茶店’과 차를 바치기 위한 ‘다소茶所’도 존재했다. 한편 고려시대에는 ‘양온서良醞署’라는 관청을 두어 왕실에서 필요한 술을 관리했으며, 개경에는 6개의 주점도 운영하며 술을 판매하고 화폐도 사용하도록 했다. 고려사회에서 술은 문사들의 회합, 왕실 연회와 제의祭儀 등에서 없어서는 안 되는 매우 중요한 품목이었고, 이 때 잔과 병, 주자 등이 청자로 제작되어 술을 마시기에 적합한 도구로서 활용되었다.
2실 의례儀禮와 완상玩賞
고려는 10세기경부터 중국에 이어 청자를 만들게 된 이래, 국가 행사나 각종의례 뿐 아니라 일상문화에서도 애호하고 완상하였다. 고동기를 완상하는 송의 풍조가 유입되면서 고려에서는 방고기물들이 제작되었는데, 향로가 중심을 이루었다. 주로 사각형의 방정方鼎이나 원형의 삼족정三足鼎 형태가 금속과 자기로 번안되었다. 또한 귀족은 물론 민간에서도 모두 향을 즐겼다. 다양한 향구香具가 만들어졌는데, 특히 향로는 상형의 동물을 본뜬 경우가 많았다. 이 밖에도 고려의 왕실과 귀족층, 문인들 사이에서는 화훼 애호 풍조가 유행하여 청자화분이나 수반 등도 제작되었다. 이처럼 다양한 기형과 용도를 지닌 청자를 통해 고려의 다채로운 사회상과 예술적 취향을 살펴볼 수 있다.
3실 공예工藝의 상호관계
고려시대 공예품인 도자기·동기·금은기·목기·칠기 등은 서로 분리되어 생산·소비된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 혹은 경쟁관계 속에서 모방하고 대체하면서 공존하였다. 특히 청자는 청동기, 도기와 기종의 특징을 공유하고 있어 서로 영향관계 속에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종교 의식이나 일상에서 사용된 정병과 분묘 부장용에 활용된 반구병 등은 청자·동기·도기로 동시에 제작되었고, 편병은 도기의 영향으로 11세기 이후 청자로 제작되었다. 청자로부터 영향을 받은 도기매병은 거의 동일한 형태를 갖추고 있는데, 마도 2호선에서 출수된 청자와 도기매병이 그 예로 확인된다. 일부 금속기로도 만들어졌던 표형병은 청자와 도기로 많이 제작되었는데 청자에서는 상감기법으로 기면을 가득 채운 양질청자로 나타나 도기와는 질적 차이가 있어 재질에 따른 위계가 달랐음을 짐작하게 한다. 이러한 상감기법은 금속공예 및 나전과 같은 고급 공예품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수준 높은 기법으로 양질의 고급청자에 주로 사용되었다.
4실-5실 부안 유천리 가마터 수습 고려 청자 · 백자 도편
전라북도 부안군 보안면에 자리한 유천리 가마터는 고려시대를 대표하는 고급 자기 생산지 중 하나이다. 일제 강점기에 이곳이 고려 왕실의 자기를 제작했던 곳으로 알려져 주목받기 시작하면서 대부분의 가마가 도굴되어 토층이 훼손되었다. 이중 최상급 청자 생산지로 평가되는 12호 가마의 도굴 · 반출되었던 도편의 일부가 해방 후 본 박물관과 국립중앙박물관에 수장되었다. 본 박물관 소장 유천리 도편 자료는 1983년에 <부안 유천리요 고려도자>전을 통해 일부 공개되었으며, 기존 연구 성과와 함께 추가로 재정리하고 수리와 원형 복원을 거쳐 그 상세 내용을 공개하게 되었다. 소장도편은 청자와 백자, 소량의 도기가 포함되어 있다. 청자는 모두 30여종으로 매병, 도판, 뚜껑, 접시, 병, 발, 잔, 기대, 합, 잔탁, 반, 완, 주자, 호, 돈, 화분, 장고, 다연, 승반, 향로, 베개, 타호, 유병, 주발, 기와, 요도구 등 기타 특수기종이 확인된다. 백자는 접시, 합, 병, 뚜껑, 발, 장고, 잔탁, 완으로 모두 10종이다. 이중 접시와 뚜껑이 가장 많은 유형을 나타내며, 다양한 형태와 수량을 자랑하는 그릇받침(器臺)도 주목된다. 이와 같은 다종다양한 유천리 도편자료는 강진 용운리(10호-Ⅱ층 나·다 유형)와 유사한 기형과 제작기법을 보여주고 있어 고려 전성기인 12-13세기에 전남 강진과 더불어 쌍벽을 이루던 부안청자의 다양한 장식기법과 고도의 제작기술을 확인할 수 있다.
6실 근대기의 청자 近代靑瓷
조선말 일본의 고려자기 애호 취향이 확산되면서 근대기에 이르면 고려청자를 재현, 상품화하는 경향이 나타났다. 또 경성미술구락부(京城美術俱樂部)라는 미술품 경매회사가 설립되면서 청자는 중요한 거래의 품목이 되었다. 19세기경부터 골동거래가 시작된 이래 1910~1920년대에는 청자수집에 몰두하는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되었고, 국토에 대한 도굴이 심화되면서 골동품 거래는 호황을 맞게 되었다. 이때 청자에 대한 관심은 청자를 재현하고 기념품으로 출시하는 계기가 되었는데 진남포에 개설되었던 삼화고려소(三和高麗燒) 등지에서는 재현품 고려자기를 만들어 본격적으로 판매하게 되었다. 한편 황인춘(黃仁春, 1894-1950)은 개성에 고려청자연구소를 설립하는 등 일본인이 독점하던 청자재현 작업에 뛰어든 대표적인 인물이다. 이화여자대학교는 1959년 미술대학 내에 도예연구소를 설치하고 황인춘의 아들 황종구(黃種九, 1919-2003)를 초빙하여 한국전통 청자를 계승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