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산재의 차도구
향산재의 차도구

새들이 나무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는다. 참새도 그렇고 비둘기도 그렇다. 번식기의 계절인 여름이다. 새 둥지에서 먹이를 달라고 갓 부화한 새끼들이 아우성친다. 어미 두 마리는 부지런히 먹이를 실어 나른다. 나무 밑자락에 가만히 낳아 놓은 꿩알들이 흥미롭다. 활동적인 자연계의 일상생활이다. 잊고 있었던 ‘나’를 채우는 뜨거운 여름의 나날들이다. 자연의 이치다. 나를 비운다는 것, 나를 채운다는 것이다. 살찐 가을을 위해 여름은 바람을 쓰다듬으며 안개에 가득 찬 이슬을 머금는다. 햇살 가득 품으며 때론 빗방울을 먹는다. 때론 폭우, 폭염 등 갑작스러운 기후변화에 소리 없이 적응하는 기간이다. 허나 우리가 간과하는 것이 있다. 보이지 않는 것. 과실수들은 열매를 키우면서도 내년을 미리 준비하며 자신을 몸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사람은 늘 눈앞에 펼쳐지는 것만 본다. 다급한 일상생활 일수록. 조급한 눈, 작아지는 세상이 답답하다. 살아갈 노후를 걱정하면 더욱 그렇다. 다 욕심에서 비롯된 것이다. 적으면 적은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그 만큼 살면 되는 것이다. 자기 능력에 비해 너무 큰 것을 원하기 때문이다. 마음을 내려놓으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 삶이 즐거웠다는 자신의 미래.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자신의 삶을 말이다. 심희수는 계축옥사 등 지난 날 붕당 정치와 세도 정치, 권력 싸움에 살아야 했던 자신의 지난날들. 문득 문득 지난 삶들이 무의미 하다는 것을. 옳고 곧은 청백리로 살았던 자신의 일생. 한적한 산골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며 스스로의 마음을 읊고 있다. 그리고 비로소 깨닫는다. 지금 이 산속이 내가 있어야 할 자리였다고. 오늘을 이야기 하자. 어제의 일은 어제의 일대로 보내버리고. 오늘 이 순간을 노래하자. 한 순간이라도 참다운 삶이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자. 늦은 밤, 두 눈을 감고 나를 음미하며 마음을 읊는다. 매일 밤 한잔의 차를 끓이며 내 마음을 읊는다. 이것이 모든 이에게 하루의 생활이기를 빌어본다. 글 이능화 기자

燈夕詠懷

                 심희수(沈喜壽:1548 ~1622)

又逢燈夕感年華/ 不是他鄕不是家/ 燕已重來鶯未至/ 花雖盡落柳堪誇/ 紛紛世路黃塵起/ 孑孑人生白髮斜/ 悄坐山窓無酒興/ 呼兒半夜促煎茶

깊은 밤 마음을 읊는다

또 저녁 등 켜니 지난해 감회가 새롭다/ 이는 타향도 아니고 집도 아니네./제비는 이미 두 번이지만 꾀꼬리는 아직 오지 않네./ 꽃은 다 졌으나 버들은 보기 좋다네./시끄러운 세상엔 탁한 먼지 일고/ 외로운 인생살이 흰머리만 빗겼네./조용히 산집 창 앞에 앉았으나 주흥이 없으니/ 한밤에 아이 불러 차 끓이라 재촉하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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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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