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흔히 ‘사회인’과 ‘자연인’이라는 개념이 공간에 의해 분리된다고 생각한다. 가령 회사에서는 사회인이지만 집에서는 자연인, 혹은 도시에서는 사회인이지만 시골에 가면 자연인이 된다는 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구분은 지나치게 단순하고 피상적이다. 사회인과 자연인은 삶의 관점과 방식 자체가 다르다. 우리 모두는 사회나 문화에 속박되지 않는 자연인에서 출발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며 그 출발점을 까맣게 잊을 정도로 사회인으로서의 삶에 몰두한다. 치열한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기 위해 ‘사회의 룰’을 숭배하며 언제 계절이 오고 가는지 어떻게 꽃이 피고 지는지조차 점점 잊어간다. 그리고 은퇴할 때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또 다른 삶에 눈을 돌리지만 선뜻 길을 정하지 못하고 방황하게 된다. 《사라져 아름답다: 은퇴할 사람들과 은퇴한 사람들에게 띄우는 세 번째 지리산 통신》은 바로 이러한 삶의 후반기에 놓인 세대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33년의 방송인 생활을 접고 은퇴 7년차인 저자는 직접 자신의 경험을 소개하며 사회인의 옷을 벗고 자연의 섭리에 순응하는 삶으로 돌아가 아름답게 인생을 마무리 지으라고 이야기한다.

여기 초로初老의 한 남자가 있다. 가난한 시골 출신으로 고학 끝에 명문대를 졸업하고 유명 방송국에서 불꽃 튀는 진검승부를 거쳐 정상에 오른 입지전적 인물. 그는 세인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성공한 사회인’이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어떤 허허로움을 느꼈다. 이 숨 가쁜 질주의 ‘끝’에서 기다리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이 ‘유한한’ 삶을 어떻게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걸까? 이런 고민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깊어졌고 이윽고 그는 좁은 사회 속에서 규정지었던 삶을 대자연으로 확장해야만 그 답을 얻을 수 있음을 깨달았다.

그리하여 그는 지리산의 품에 안겼다. 세속적 계산과 이해관계에서 벗어나 무상無常의 섬진강 물결에 몸을 싣고 인생의 의미를 찾기로 했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사유의 여정으로의 초대장이다. 저자는 지리산에서 제2의 인생을 시작할 수 있도록 깨달음을 준 자연물과 인물이 있는 곳으로 독자를 안내한다. 강과 바다가 만나지는 지점으로 세상살이의 끄트머리를 암시하는 망덕 포구, 피고 지는 삶의 이치를 보여주는 섬진강변 벚꽃길, 잊었던 동심을 일깨우는 순수한 농촌 아이들, 진정한 이타심을 가르쳐 주는 수녀님들, 묵묵히 자신의 길에 정진하며 번뇌를 다스리라고 다독여 주는 스님들 … .

저자의 발길을 따라 지리산 곳곳을 거닐며, 아름다운 대자연과 그 안에서 자연의 품성에 물들어가는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행복한 삶과 아름다운 마감의 비밀이 결코 멀리 있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잔잔하지만 울림이 큰 시적인 문체와 저자가 직접 찍은 수채화 같은 사진들도 오랫동안 여운을 남긴다. 이제 떨어지는 꽃잎을 다시 바라보자. 꽃이 지는 것은 바람 때문이 아니다. 그 향기와 아름다움을 추억으로 남긴 채 자신의 자리를 연둣빛 잎과 열매에게 내주는 꽃은, 불같은 격정을 뒤로 하고 자연의 섭리를 받아들이는 성숙한 사랑의 실천자이다. 지상에서 이별하는 이의 뒷모습도 이와 같기를 … .꽃처럼 아름다운 삶과 이별을 준비하는 모든 이들에게 이 책을 바친다.

구영회지음. 나남. 값 14,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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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희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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