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명 : 이순구 <웃음꽃-정원에서> 60.6×72.7cm, oil on canvas, 2015
작품명 : 이순구 <웃음꽃-정원에서> 60.6×72.7cm, oil on canvas, 2015

감꽃이 진다. 툭툭 떨어지며 빗방울 젖은 땅위로 가볍게 튕길 때면 이 땅은 여름으로 접어든다. 녹음이 지천인 계절은 공기마저 달다. 멀고 가까움 모두가 그리움을 품은 푸르름이다. 앞산과 뒷산 어디쯤에서 뻐꾸기 울고, 노란 꾀꼬리 하늘을 오르락내리락 정답게 노닌다. 여름은 ‘열음’을 실천하며 생의 거룩한 한가운데로 우리를 안내한다. 담을 휘돌아 핀 노란 호박꽃 무리에 꽃가루를 온몸에 뒤범벅인체 꿀을 따는 벌들의 날갯짓에서 달콤한 향기가 난다. 우거진 고구마넌출 사이 까마중 까맣게 익어 달고 새콤한 맛을 전해준다.

비가 거세게 오는 날 숲 아래 거미가 침묵으로 비를 견디고 있다. 고된 일상이다. 햇볕이 들 때까지 매미는 깃을 털며 잠잠히 비를 맞는다. 반짝 해가 들면 긴 호흡으로 울음을 운다. 장맛비는 많은 양의 비를 몰고 와 이곳저곳 작은 폭포와 웅덩이를 만든다. 신기하게도 개울에서 꽤 먼 마당에까지 미꾸라지가 올라와 꼬물거린다. 비를 못 견딘 여치는 긴 수염을 풀어헤친 체 배를 뒤집고 짧은 생을 다하기도 한다. 장독대에는 두꺼비도 요리저리 눈을 끔벅인다. 우물가에 민달팽이가 거처를 옮기고 있다. 긴 여정이다.

우르르 한 떼의 아이들이 몰려나와 놀이를 만든다. 모래로 작은 보洑를 쌓고, 풀잎 배를 띄우고 호박잎 대롱으로 호스를 만들어 풀줄기로 만든 물레방아를 돌리기도 한다. 깔깔깔 천진한 웃음이 울려 퍼진다.

여름은 삶의 정점과도 같은 계절이다. 활발함으로 가득한 아름다운 시간이다. 한 발짝 떠나 생각하니 유년의 여름은 뒷마당에 핀 배롱나무 같았다. 배롱나무의 꽃처럼 조용했지만 분주했고, 미숙한 열정이 있었지만 나무의 표피처럼 차분했다. 그늘진 정자나무 아래에나 서향西向의 툇마루에 않아 시원한 보리차 한잔으로 여유를 즐길세, 녹음방초綠陰芳草는 더욱 푸르고, 까끌한 모시옷 사이 흐르던 땀은 지난한 삶의 고뇌와 함께 잠잠히 잦아든다. 글 그림 이순구 화백

<차와문화 2015.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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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미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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