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비들은 현대인의 등산과는 다른 목적으로 산과 물을 찾았고, 다른 기록을 남겼다. 건강을 목적으로 산을 오른다는 기록은 찾아보기 어렵다. 현대인들에게 조선 선비의 산수유람 기록은 매우 비생산적인 행위일지 모른다. 하지만, 이들의 글은 집 근처 가까운 산조차 찾지 못하고 바쁘게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색다른 읽을거리와 인생의 지침서가 될 수 있다. 더운 여름, 무더위를 피해 시원한 집에서 산을 유람하는 여유를 이 책을 통해 느껴보자.

조선 선비들이 산수를 즐겨 찾은 이유는 무엇보다 성현 공자孔子의 가르침을 따르기 위해서였다. 공자가 “지혜로운 자는 물을 좋아하고, 어진 자는 산을 좋아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고 말한 이래로 ‘요산요수’樂山樂水는 요즘의 중고등학생들까지 다 아는 유명한 말이 되었으며, “태산에 올라보니 천하가 작게 보인다”(登泰山而小天下)라는 말은 맹자의 호연지기浩然之氣와 더불어 군자의 덕목으로 강조되었다. 그러한 산수 체험 기록의 1차 독자는 물론 자기 자신이지만, 2차적으로는 자신과 같은 생각을 지니면서도 여러 가지 이유로 산수를 찾아가지 못하는 선비들을 상정할 수 있으며, 적극적으로는 자신과 생각이 같지 않은 독자에게 산수유람을 권하기 위해 기록한 것이기도 했다.

옛 시조에 “ 청산靑山도 절로절로 녹수綠水도 절로절로 산山 절로 수水 절로 산수간山水間에 나도 절로 그 중中에 절로 자란 몸이니 늙기도 절로 하리라”라고 한 바와 같이 선비들은 산수유람을 통해 자연의 도道를 깨닫고 자연과 더불어 늙어가려는 자연관을 드러냈다. 이것은 자연 그대로 관찰하여 아름다움을 노래하고 내 몸을 자연에 의탁함이다. 또 이와는 반대로 자연을 인간 속으로 끌어들여 관념화시키고 철학적인 자연을 읊기도 했다. 이러한 경향은 퇴계 이황 등 일군의 성리학자들을 꼽을 수 있다. 선비가 자연을 그대로 따라 하나가 되는 것이나 선비가 자연에게 배워서 하나가 되는 것 둘 다 자연과 내가 물아일체의 경지에 오르는 것은 같다고 하겠다.

산과 물이 삶에서 더욱 멀어진 시대를 사는 현대인들에게 이러한 사고, 그리고 이들이 남긴 글은 무척 이질적이다. 그렇다고, 누워서 산과 물을 누리는 방법, 즉 와유臥遊의 방법 자체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현대식 건물 안에서 수석을 수집하고, 화초를 키우고 완상하며, 멋진 산수화를 방에 걸어두고 감상한다. 여기에 한 가지 방법을 더 보태자. 옛사람의 글을 통해 갈 수 없는 아름다운 땅뿐만 아니라 개발 등을 통해 이미 사라져버린 산과 물까지 함께 즐겨 보는 건 어떠한가?

유몽인. 최익현외. 돌베개. 값 1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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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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