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여 년 전 『나의 서양미술 순례』(창비, 1992)로 시작했던 서경식의 미술 순례가 『나의 조선미술 순례』(반비, 2014)에서 ‘조국’을 경유하여 드디어 나고 자란 곳, 일본을 찾아 발걸음을 내딛는다. 서경식은 오랫동안 쓰고 싶었으나 회피해 온 영역인 일본미술을 향해 “단순히 친근하다고 말하고 끝내 버릴 수 없는”“애증 섞인 굴절된 마음”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가장 친근한 대상이 ‘침윤’이라는(혹은 침식당했다는) 부정적 뉘앙스를 띤 말로 표현되는 사정은 무엇일까. 이 대목에서 “ ‘나’라는 존재는 일본어라는‘언어의 감옥’에 갇힌 수인이다.”라는 그의 유명한 언급을 떠올릴 수 있다. 『나의 일본미술 순례』는 서경식이 처해온 언어 감각의 분열이 미적 감각에 적용된 책이라고도 볼 수 있다.

서경식은 ‘일본’이라는 질곡 아래 발버둥 치면서 보편적인 ‘미’의 가치를 추구하며 싸워 나간 ‘이단자’를 소개한다. 왜 그는 한국에서 친구나 지인이 찾아오면 개인적으로 편애하는 미술가의 작품을 꼭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했을까. 왜 그들의 작품에서 자신이 느낀 매력을 ‘조국’의 사람과도 과연 공유 가능할지 궁금했을까. 근대라는 시대, 수십 년에 걸쳐 식민지 지배를 받았던 “조선인이라는 존재는 식민지 경험을 통해 종주국의 미의식에 침투당한 사람들이라는 의미 또한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을 진정으로 비판하기 위해서는 자기라는 존재가 무엇에 침식당했고 또 어떻게 형성되었는가를, ‘미의식’의 수준으로까지 파고 들어가 똑바로 응시하기를 촉구한다.

미술관이 문을 닫고 도쿄에서 지방으로 가는 여행도 불가능한 시기, 서경식은 처음 기획했던 방문기 형식의 집필 방향을 바꿀 수밖에 없었다. 처음에는 아쉬웠지만, 도리어 팬데믹 상황에서 미술을 다시 들여다보는 좋은 기회가 되었다고 한다. 근대미술의 이단자들 대부분 1920년대부터 1945년까지 짧은 시기 동안만 활동했다. ‘다이쇼 데모크라시’에서 시작해서 일본이 패전에 이르는 시기라고도 말할 수 있다. 의식적이건, 무의식적이건 평생 ‘일본 근대미술’이라는 어려운 문제와 온몸으로 격투하다가 불행하게 요절한 이들이다. 그들이 살았던 시대 역시 전쟁과 역병(주로 결핵)과 전쟁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서경식은 역병의 참화 속에서 왜 뛰어난 예술이 생겨났는지 질문하고 죽음의 의미(바꿔 말하면 삶의 의미를) 스스로에게 되물을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찾는다. 코로나19가 2년 이상 맹위를 떨치고,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금,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돈 속에서 일본미술을 통해 전쟁, 근대, 죽음의 의미를 재고한다. 최재혁 옮김. 연립서가. 19,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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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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