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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승 경봉선사 鏡峰禪師

기사승인 2021.10.05  18:51: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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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만난 근현대 차인

▲ 경봉선사는 시·서·화 삼절에 다도茶道까지 겸비했는데, 특히 다도생활을 하는 나의 눈에 비친 다승茶僧으로서의 선사의 다선일미의 참모습은 아직도 가슴에 아련히 남아있다.

경봉선사(鏡峰;1892∼1982)는 간화선을 통하여 깨달음을 얻었으며, 불보사찰 통도사 극락선원에 주로 안거하며 가람수호와 중생교화에 남다른 업적을 남긴 근현대 인물이다. 근현대 불교개혁의 와중에서도 정신적인 역할을 하였으며, 당대 고승들과의 서신 및 법 거량을 통하여 독보적인 선풍禪風과 다풍茶風을 남겼다. 또한 경봉선사는 시·서·화 삼절에 다도茶道까지 겸비했는데, 특히 다도생활을 하는 나의 눈에 비친 다승茶僧으로서의 선사의 다선일미의 참모습은 아직도 가슴에 아련히 남아있다.

70년대 초반부터 친구와 함께 통도사를 자주 찾았다. 할아버지 같은 선사의 해맑은 미소와 함께 명정明正스님이 만들어준 진하고 짠 녹차를 마시며 선차禪茶의 묘미를 느끼며 통도사 솔숲 자락을 거닐곤 했다. 1978년의 어느 봄날이었다. 아인亞人 박종환 선생이 이끄는 유서 깊은 ‘진주차인회’ 식구들과 함께 경봉선사를 친견할 때였다. 서예가로 유명한 은초隱樵선생, 김기원 교수 등 진주 지역의 문화 예술계 인사들이었다. 경봉 스님과 축서암과 조령요를 돌아보는 차 문화 여행에 안내 겸 동참을 했던 것이다.

▲ 경봉선사의 ‘茶’ 자 글씨 중에 힘차고 멋진 글씨를 좋아해서 그 작품을 1980년도 초에 ‘한국차문화회’ 등 차 문화 단체를 만들 때 요긴하게 사용했고 또한 ‘전다련’ 초창기에 강의 등으로 지도할 때 수련대회 기념다포에 쓰라고 권유하기도 했던 추억이 새롭다.

한 시대의 눈 밝은 도인을 만난다는 일은 언제나 가슴을 뛰게 한다.

‘극락’에 오르자, 곧바로 선사의 방으로 안내되었다. 선사의 유명한 삼소굴三笑窟을 마주한 요사체였다. 평상시 찾아가면 보통 이곳에 안거하였다. 진주에서 온 차인들이라 소개하니 선사는 대뜸, 

“차 몇 잔 마셨느냐?” 하고 선문禪問을 던졌다. 뜻밖의 물음에 모두들 말문이 막혔다. 모두들 선사의 얼굴만 쳐다보고 있으니 침묵을 지키던 선사는 빙그레 웃으며 우리들에게 화두話頭를 던졌다.

“전삼삼후삼삼前三三後三三”

선사의 처소를 빠져나오면서 ‘차 몇 잔 마셨느냐’란 화두를 가슴에 안고 바라본 삼소굴 앞의 시원한 파초 잎은 선방禪房의 또 다른 묘미였다. 극락선원을 빠져나오며 누군가가 선사의 애제자인 선원장 명정스님께 물었다. “스님, ‘전삼삼 후삼삼’ 뜻이 뭡니까?” 명정스님이 특유의 미소를 지으며, “봄이 오니 꽃이 핀다는 것이죠.”라고 말했다. 그 스승에 그 제자다. 지금은 극락에 그 스승도 그 제자도 없다. 선사는 어디에 있을까?

선사의 ‘茶’ 자 글씨 중에 힘차고 멋진 글씨를 좋아해서 그 작품을 1980년도 초에 ‘한국차문화회’ 등 차 문화 단체를 만들 때 요긴하게 사용했고 또한 ‘전다련’ 초창기에 강의 등으로 지도할 때 수련대회 기념다포에 쓰라고 권유하기도 했던 추억이 새롭다.

선사가 입적한 그 해(1982년)인지 그 전 해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는데, 어느 초 여름날 극락선원을 홀로 찾았다. 친견하러 선사가 계시는 방에 들어가자 몸이 편찮았던 모양인지 시자에게 부축을 받고 있다가 절을 하려고 하자 좌정하며 절을 받고나서는, 대뜸 “몇 살이고?” 물었다. 나이를 말하자, 선사는 빙그레 미소를 보이며 말했다. “한창 좋은 때다”

“스님, 손 한번 잡고 싶습니다” 선사는 두 손을 내밀었고 나는 야윈 선사의 따뜻한 손을 잡고 한참동안 선사의 얼굴을 비라봤다. 그리고 경봉선사와 이승에서의 만남은 그것이 마지막이았다.

선사가 입적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극락선원을 찾던 날, 주지 스님 방에 홀로 앉아서 선사의 다선일미를 노래한 선시禪詩를 읊으며 선사의 왕생극락을 빌었다.

산 위에 걸린 달은 운문의 떡이요 山頭月掛雲門餠

문밖에 흐르는 물은 조주의 차로다 門外水流趙州茶

이 중에 어떤 것이 참 삼매인가 箇中何者眞三味

구월국화는 구월에 피는구나 九月菊花九月開

경봉선사는 1982년 7월 17일 오후, "야반삼경夜半三更에 대문 빗장을 만져 보거라" 라는 임종계를 남기고 세수 91세, 법랍 75세로 열반에 들었다.

                                    차와문화 편집고문 여천 김 대철 

여천 김대철 teac21@naver.com

<저작권자 © 뉴스 차와문화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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