벽해타운碧海朶雲은 추사 김정희가 초의대사에게 보낸 편지書簡를 모아 첩帖으로 만든 일종의 편지모음 글이다.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서간은 무려 38점이나 된다. 이중 둘 사이의 간절하고 애뜻한 글만 모아 '푸른 바다에 떠 있는 한 송이 구름 '이라는 제목을 달아 첩으로 엮은 것이 13점이다.
벽해타운碧海朶雲은 추사 김정희가 초의대사에게 보낸 편지書簡를 모아 첩帖으로 만든 일종의 편지모음 글이다.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서간은 무려 38점이나 된다. 이중 둘 사이의 간절하고 애뜻한 글만 모아 '푸른 바다에 떠 있는 한 송이 구름 '이라는 제목을 달아 첩으로 엮은 것이 13점이다.

벽해타운碧海朶雲은 추사 김정희가 초의대사에게 보낸 편지書簡를 모아 첩帖으로 만든 일종의 편지모음 글이다.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서간은 무려 38점이나 된다. 이중 둘 사이의 간절하고 애뜻한 글만 모아 '푸른 바다에 떠 있는 한 송이 구름 '이라는 제목을 달아 첩으로 엮은 것이 13점이다.

운우지정雲雨之情, 옛 사람들은 꽃보다 더 아름다운 연인과의 사랑의 노래를 이렇게 불렸다. 봄날의 여린 보슬비가 매화꽃 잎에 펴듯, 여름날 호수가에 핀 연꽃이 구름송이를 여며 품듯 말로 나타낼 수 없는 사랑 말이다. 남녀지간의 교감을 넘어 초의와 추사는 종교를 초월해 예술과 학문 시서화의 우주적 시공을 담소하며 한 생을 풍미하고 살았다. 여기 13첩 벽해타운에서는 차를 통한 영혼의 교감에 젖어 있는 여섯편을 추려 연재할 예정이다.

이들 문집과는 앞뒤로 달리 피봉皮封과 별지別紙가 첨부된 것은 물론 끝에는 일자와 서명이 적혀있다. '벽'은 <벽해타운첩>순서이고, '완'은 추사가 초의에게 보낸 38건의 번호로 <완당전집>에 수록되지 않은 것들이다.

첫번째 편지 - 편지봉투에 쓰인 글 <초의스님 좌선하는 자리에>

스님께서 객지에 떠도신 지가 또 일 년이 지났습니다. 도문1)에서 노지의 흰 소를 잡는 것을 금지하지 않았다는 것은 또한 사람에 따른 계획이 아닌지요? 선문에서 도살을 한다는 것은 사람들이 미워해야 할 말로 이것은 사람을 속이는 말입니까? 속이지 않는 말입니까?

바라옵건데 다시 오시던지 오시지 않으시던지, 오지 않는 것이나 참으로 오는 묘함의 경계는 세상의 눈을 흐리게 하는 것이 아닌지요? 향훈스님과 함께 편지가 왔는데, 향훈스님이 병이 났다는 말은 다시 사람을 흐리게 하는 말이라고 생각됩니다.

초의스님은 살펴보십시오. 글을 써서 보냅니다.

皮封 - 草衣禪几

客榻燈火 又過一年 時又屠門解禁露地白牛/ 亦作隨人計否 禪門犯屠 令人可惡 是誑語否 不/ 誑語否 --- 仰復來不來/ 不來實來之妙界 瞎了世眼否 薰與書來 薰2) /病亦復誑語者

草衣梵照 泐便

벽해타운의 주석을 단 해인총림 다주 여연스님이 홀로 차를 덖고 있다.
벽해타운의 주석을 단 해인총림 다주 여연스님이 홀로 차를 덖고 있다.

두번째 편지 초의에게 줌

병석甁錫을 떠나보낸 지도 하마 두 해(1835년 헌종 1년)가 지났는데 잘라놓은 듯 소문이 없으니, 정토淨土와 범계凡界이 갈라짐은 저 은하와 같아서 형세가 제접梯接하기 어려워서인가. 심지어 편지를 보내도 답이 없으니 속인俗人은 본시 애가 좁은지라 능히 대원융大圓融의 경지에 유감이 없을 수 없소. 세상 인연을 잘라 끊어 버리고 솔바람과 물 달 속에 반드시 다시금 정채精彩를 더해 가는지요. 구구한 이 진환塵寰속에서 목을 늘여 바라보자니 진실로 생각이 끌려 멀리외곤 하외다. 거사居士는 근간에 은명恩命을 입어 옛집으로 돌아와 있으며 다시 잠불簪紱을 매만지게 하니 감격함이 그지없소. 아무리 수미산須彌山으로 먹을 삼아 글을 쓴다 한들 어떻게 이 정곡精曲을 다할 수 있겠는가. 철선鐵禪 및 여러 노숙老宿3)은 모두가 길하고 상서롭게 잘 있는가. 따로 편지를 갖추지 못하니 부디 이 관곡한 심정을 전달하여 그로 하여금 자관慈觀을 돌리고 아울러 먼젓번의 한 말을 실천하여 이 바라는 마음에 부응해 주기를 바라 마지않소. 나머지는 뒤로 미루고 간신히 이만 적으며 격식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을미(乙未:1835)납월臘月 오일 밤 거사는 이 편지를 쓰는데 이때 수선화가 만개하여 맑은 향기가 벼루에 뜨고 종이에 스며드네.

與草衣-自送甁錫. 乙未 臘 五夜 居士書

自送甁錫 已經兩臘而截然無聞 淨土凡界判 若銀漢 理難梯接 至於有書亦無答 俗人自是腸窄 不能無感於大圓融之地 斷絶世諦 松風水月 必有更增精彩 區區塵寰中 引領瞻望 寔不勝牽想遙誦 居士 間蒙恩飭還處舊第 重理簪紱 感靡極 雖須彌爲墨 無以盡此 銕禪諸名宿 具吉祥自在否 無以另具 須轉及此款款之私 俾回慈觀 竝伸前言 以副翹企 爲望爲望 餘歎草不式 乙未臘五夜 居士書時 水仙盛開 淸香泛硏沁紙

사설私說

1830년 윤상도(尹商度(1768~1840) 옥사에 연류된 부친 김노경(金魯敬)이 고금도에 유배되는 일 등으로 마음을 다쳤던 추사가 마음과 정신을 추스리면서 초의스님에 대한 그리움을 애절하고 간절한 마음을 그의 간찰에서 남겼다. 추사와 초의가 나눈 정신적 교감은 우리의 삶을 슬프고 고통스럽게 하는 불통의 시대를 성찰하고 반성하게 하는 전범이다. 차를 통해, 예술의 세계를 통해, 인문학적 교감을 통해 지역적 신분적 상황을 초월한 추사와 초의의 교감은 단순한 정분을 떠난 아름다운 정신세계의 성찰을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우리시대 차인들에게 큰 귀감이 된다.

시대적 천재였으면 거대한 우주적 성찰을 담보했던 추사는 '거사'란 칭호를 쓰며 초의에게 한껏 자신을 낮추고 있다. 그리고 자관慈觀이란 말을 쓰며 원융무애한 사랑을 이야기 한다. 자관은 자비慈悲의 다른 이름이다. 자비란 슬픔과 사랑, 아픔과 기쁨 즉 희노애락을 한꺼번에 품어내는 자비동체를 뜻하고 있다. 자비동체는 우주적 사랑이다. 우리시대 가장 필요한 덕목은 바로 너와 나를 구별하지 않고 모두를 자신처럼 사랑할 수 있는 우주적 사랑이 필요한 시대기 때문이다. 오늘도 시대를 넘어 추사는 가장 추운 겨울의 한복판에서 수선의 문향聞香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다. 눈 쌓인 서재 한 귀퉁이 차실에서 차 한잔, 수선 향기 한 모금을 마시며 새해에도 차를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의 건강한 차실림을 기대해본다.

1)- 도문은 본래 백정이 고기를 파는 저자를 이르는 말이다. 여기서는 선가에서 자성을 찾기 위해 선가에서는 부처도 죽이고 조사도 죽이라고 하는 것을 비유하여 도문이라고 한다. 여기서 흰소는 백파긍선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이는 데, 당시 초의선사와 백파선사 사이에 선에 관한 뜨거운 논쟁이 있었기 때문이다.

2)취현 향훈(醉玄 向薰·1801∼1885)은 香薰이라고 쓰기도 한다. 초의선사의 제자 항렬로 특히 잎차를 잘 만들어 추사는 향훈에게 다선(茶禪)이라는 호를, 초의선사에게는 명선(茗禪)이라고 호를 지었다고 한다.

3)노숙 또는 장로(老宿/ 長老) : 오랫동안 수행하여 덕이 높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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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인총림 다주 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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