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차 문화는 삼국시대에 시작되어 불교의 융성과 함께 고려 때 정점을 맞았다. 그러나 조선조에 들어서자 차 산실 역할을 하던 불교 사찰이 쇠하면서 덩달아 움츠러들었다. 차를 사랑하고 즐겼던 옛 지성인들은 우리 차 문화의 세세한 면모를 시ㆍ서화ㆍ논설 등의 작품에 담아 그 정신을 온전히 유지하려 애썼다. 이러한 차에 관한 핵심 저술 30가지를 한데 모아 정치하게 풀어낸 ‘다서(茶書)’ 연구의 완결판 《한국의 다서》가 출간되었다.

이 책은 조선 지성사 연구의 대가 정민 교수와 차 전문 연구자 유동훈 박사가 함께 집필했다. 정민 교수는 우리나라 최초의 다서 《부풍향차보(扶風鄕茶譜)》와 이덕리의 《기다(記茶)》 외에 수많은 차 관련 사료들을 학계 최초로 발굴ㆍ소개해왔으며, 유동훈 박사는 국제차문화산업연구소에서 조선의 차 문화를 깊이 있게 연구해왔다. 두 연구자는 그동안 파편적으로 공유되고 이전의 자료를 답습하며 대중과 유리된 차 문화 연구를 안타깝게 생각하고, 모호했던 한국 차 문화사의 구도를 명확히 정립하기 위해 이 책을 집대성했다. 조선 전기부터 구한말까지 한중일을 아우르는 방대한 사료를 총망라했고, 차의 역사와 유래, 애호와 부흥, 특징과 성질, 산지별 종류와 효능, 재배와 제다법, 음다飮茶 풍속, 경제성과 상품성에 이르기까지 차에 관한 역사와 교류를 다채롭고 풍성하게 담아냈다.

이 책에 실린 작품은 시, 부(賦, 대상에 대한 감상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는 산문시), 송(頌, 특정 대상을 예찬하며 쓴 글), 편지, 절목(節目), 상소문, 논설, 통사(通史)에 이르기까지 다양하다. 전승업의 〈다창위부〉와 조희룡의 〈허소치가 초의차를 선물한 데 감사하며〉와 같이 국내에 처음 발굴하여 소개하는 자료도 있다. 심도 있는 원문 풀이와 해설을 제공할 뿐 아니라 이본(異本)을 꼼꼼히 교감해 주석을 달고, 전사 과정의 오류도 정확히 반영했다. 옛글을 현대적 언어로 풀어내어 연구 자료로서의 효용과 글 읽는 맛 어느 하나 놓치지 않았다. 학문ㆍ예술ㆍ문화 전방위에서 이뤄낸 한국 차 문화의 정수를 오롯이 느끼게 함과 동시에, 차 문화사 연구의 새로운 이론적 토대가 될 독보적 저작이다.

30여 차 관련 문헌의 가치와 의미를 온전히 복원한 역작

이 책에서는 조선 지성인들이 일구어온 차 문화사의 기념비적 저술들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다. 차에 대한 방대한 정보를 집대성한 이목의 〈다부(茶賦)〉부터 차 무역을 제창한 이덕리의 《기다》, 차 문화 중흥의 신호탄이 된 정약용의 〈걸명소(乞茗疏)〉, 차의 효용을 예찬한 초의 의순의 《동다송(東茶頌)》, 석탑에서 나온 700년 된 차의 기록을 담은 이상적의 〈기용단승설(記龍團勝雪)〉, 한국 차 문화사를 풀어 쓴 최초의 통사 문일평의 《차고사(茶故事)》까지. 인물과 작품을 시기별로 정리하여 우리 차 문화 전반의 유구한 역사를 일목요연하게 담아냈다.

〈다부〉는 조선 전기 학자 이목이 지은 230구에 달하는 장시이다. 중국 역대 고전에서 차와 관련한 온갖 고사와 인물을 총동원했고, 차의 산지와 종류별 이름, 차의 효용과 약성까지 방대한 정보를 장강대하 같은 흐름으로 제시했다. 특히 해박한 지식으로 차에 대한 효능을 능청스럽게 예찬한 대목이 이채롭다.

숙취가 아직 덜 깨 宿醉未醒

간과 폐는 찢어질 듯 肝肺若裂

너 아니면 한밤중에 누가 이 술 깨게 하리 靡爾也五夜之?誰輟

사람 장수하게 하니 使人壽脩

요순의 덕 갖추었고 有帝堯大舜之德焉

사람 기운 맑게 하니 使人氣淸

백이 양진 덕이 있고 有伯夷楊震之德焉

사람 마음 편케 함은 使人心逸

이로 사호 덕이 있지 有二老四皓之德焉 _32쪽

이덕리의 《기다》는 국가 차원에서 차를 전매하여 차 무역으로 국부창출 방안을 피력한 독창적 저술이다. 정약용의 작품으로 잘못 알려져 있던 것을, 정민 교수가 다산의 제자인 이시헌의 집안에서 원문을 발견해 연구함으로써 바로잡았다. 서설적 성격의 글과 차 일반론, 차 무역론의 구상으로 이어지는 장대한 서사를 담았는데, 차에 대한 인식이 낮았던 당시 상황에서 정확한 식견과 이해를 바탕으로 차 무역의 필요성을 제안한 것이 놀랍다.

<한국의 다서> 공동저자인 유동훈 박사는 차전문 연구자로서 국제차문화산업연구소에서 조선의 차 문화를 깊이 있게 연구해왔다.
<한국의 다서> 공동저자인 유동훈 박사는 차전문 연구자로서 국제차문화산업연구소에서 조선의 차 문화를 깊이 있게 연구해왔다.

중국이 만약 우리나라에 차가 있는 것을 알게 되면 반드시 공물로 차를 바칠 것을 요구할 테니 후대에 두고두고 폐단을 열게 될 것을 염려한다. 하지만 이는 어리석은 백성이 관리가 닦달하는 것이 두려워 고기가 있는 연못을 메우는 것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이제 만약 수백수천 근의 차를 실어다 천하로 하여금 우리나라에도 차가 있다는 것을 환히 알게 한다면, 남쪽과 북쪽의 장사꾼들이 온통 수레를 삐걱대고 말을 달려 동쪽으로 몰려들 것이다. _102쪽

정약용은 고질적인 체증을 앓았다. 그러다 만덕사 주지 아암 혜장에게 얻은 차로 체증을 다스릴 수 있었는데, 혜장에게 다시 차를 청하며 보낸 글이 〈걸명소〉이다. 상소문 형식을 빌려 장난스럽게 차를 구걸하는 형식으로, 차 문화의 중흥을 알리는 신호탄이 된 뜻깊은 글이다. 이를 기점으로 훗날 초의에게 이어지는 차 문화의 부흥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재치 있는 정약용의 문재(文才) 또한 엿볼 수 있다.

고해를 건너가는 나루는 苦海津梁

단나의 보시를 가장 무겁게 여긴다 最重檀那之施

이에 몸에 지닌 병이 있는지라 玆有采薪之疾

애오라지 차를 청하는 정을 편다오 聊伸乞茗之情

용단 봉단은 내부에서 귀하게 나눠줌을 이미 다했다네 龍團鳳團內府之珍頒已?

애타게 바람을 마땅히 헤아려 宜念渴希

아낌없이 은혜를 베풀어주길 바라오 毋?波惠 _156쪽

흥선대원군이 고려시대 절 가야사 접탑을 허물자 탑 속에서 700년 전 송나라 용단승설차 네 덩이를 발견하는데 〈기용단승설〉은 그에 관한 기록이다. 송나라 차가 세상에 출현하게 된 과정과 관련한 옛 기록을 두루 인용하여 차의 제조 연대와 탑에 봉안된 연유를 추정했다. 송나라와 고려의 음다 풍속에 대한 조선 학인學人의 치밀한 분석이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고려의 승려 의천과 지공, 홍경과 여가의 무리가 앞뒤로 바다를 건너 도를 묻고 경전을 구하려고 송나라를 왕래한 것이 계속 이어졌으니, 문헌에 기록이 남아 있다. 이때 이들의 무리가 반드시 다투어 이름난 차를 구입해서 불사佛事에 바쳤고, 심지어 석탑 안에 넣어두기까지 했다. 700여 년이 지나 다시 세상에 나온 것은 또한 기이하다 하겠다. 지금에 이르러 예림藝林의 훌륭한 감상거리가 되니, 어찌 신물神物이 이를 지켜 남몰래 나의 옛것 좋아하는 벽癖을 도우심이 아니겠는가? _432쪽

 

한국 차 문화사의 통사적 체계 완성

이 책은 작품마다 작가와 자료 소개를 한 뒤, 원문 및 풀이를 제시하고, 해설을 덧붙였다. 작가를 둘러싼 시대적 상황, 작품이 쓰이게 된 이유, 정교한 원문原文 풀이, 풍부한 해설이 유기적으로 흐르며 차 문화사 전반을 폭넓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번역과 원문을 나란히 배치함으로써 사료로서의 가치 또한 높였다. 더불어 수많은 이본을 대조하고, 그 차이를 일일이 기록했다. 원작에 있던 잘못이나, 다른 이가 옮겨 쓰면서 생긴 오류 역시 빠짐없이 잡아냈다. 이 책이 본문과 대등하다 싶을 정도로 각주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이 책은 고려 이전의 음다 풍속이 조선에 들어와 어떻게 변화했는지, 조선 중기를 거치며 차에 대한 관점이 어떻게 바뀌었는지, 한국 차 문화의 정체성인 떡차는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등 다양한 차 문화의 변화와 흐름을 조망할 수 있게 한다. 차 관련 사료의 집대성을 통해 차 문화사 연구의 통사적 체계를 완성한 것이다.

국내에 최초로 소개되는 다서 〈다창위부茶槍慰賦〉

이 책에서는 두 가지 작품을 학계 최초로 소개한다. 바로 전승업의 〈다창위부茶槍慰賦〉와 조희룡의 〈허소치가 초의차를 선물한 데 감사하며〔謝許小癡贈草衣茶〕〉이다. 〈다창위부〉는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한 전승업의 글이다. ‘다창茶槍’은 찻잎이 아직 펴지기 전 창처럼 돌돌 말린 상태, 즉 상등 품질의 가장 어린 찻잎을 말한다. 다창의 차가 주는 위로를 시로 노래한 것으로, 16세기 후반 차 문화를 상세히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자료다. 〈허소치가 초의차를 선물한 데 감사하며〉는 19세기 서화가 조희룡의 작품이다. 소치 허련으로부터 초의선사가 만든 초의차를 선물 받고 감사의 뜻을 담아 친필로 써준 시첩 《철적도인시초》에 실려 있다(원본에는 제목이 없어 내용에 따라 이 책에서 제목을 붙였다). 예술적이고 유려한 표현력에서 차를 즐기던 당시의 감정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더불어 1850년 7월 16일 추사 김정희가 초의가 만든 차편茶片을 허련에게 받은 후 보낸 감사 편지가 남아 있는데, 이를 종합적으로 볼 때 당시 허련이 초의차를 전달하는 메신저 역할을 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발견은 한국 차 연구의 지평을 넓히기에 충분하다.

차 문화사 부흥의 초석이 될 기념비적 연구

오늘날 우리의 차 문화가 제대로 조명 받지 못한 것은 차 문화 정체성 확립에 소홀했던 탓이 크다. 거기에 외산(外産) 다도의 무분별한 유입과 피상적인 다도 퍼포먼스로의 치중으로 차 문화가 점차 대중에게서 멀어진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상황에 울리는 일종의 경종이다.

차는 마시는 사람의 기호를 반영해 계속 진화하고 변화한다. 이 땅에서 오랫동안 우리 선조들이 차를 어떻게 생각하고, 어떤 식으로 만들고 마셔왔는지에 관련된 탐구는 계속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차학(茶學) 연구자와 전문인뿐 아니라 차에 관심 있는 일반인에게도 의미 있는 저작이다. 꼼꼼하게 분석ㆍ정리한 사료를 통해 후학의 연구를 든든히 뒷받침하는 동시에, 우리 차 문화 전반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불러 모음으로써 차를 예찬하고 즐기던 옛 지성인들의 정신을 올바르게 되살릴 수 있는 사유의 장을 마련한다. 한국 다서의 정본(正本)이라 할 수 있는 자료를 원문과 함께 제공하는 것은, 공통된 차 문화를 향유하는 중국과 일본의 차학 연구자들에게도 놀랄 만한 일이다. 《한국의 다서》가 오늘날 차 문화의 끝 모를 침체에 대한 새로운 혜안이 되길 바란다. 김영사. 33,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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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능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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