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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오지 로산진과 야나기 무네요시

기사승인 2020.04.02  16:3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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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민예론과 아미 그 미묘한 동일함

▲ 기타오지 로산진(北大路魯山人, 1883-1959)는 천재 서예가, 전각가, 화가, 도예가, 요리인, 당대의 신랄한 독설가 미학자, 출판인으로서도 활동했다.

차를 마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와비사비 혹은 와비사비의 미학 등의 말은 매우 익숙한 용어 일 것 이다. 와비와 사비의 미학은 지난 연재에서 다루었던 일본의 미학자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론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이다.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론은 단순한 미학을 넘어서 일본의 제도권에서도 많은 지지를 받아 현재 일본의 아름다움을 정의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야나기와 동시대인인 기타오지 로산진은 이러한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론에 대해 모순점들을 지적 했다. 이와 관련 본고 에서는 기타오지 로산진의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론 비판을 통해 두 거장의 관계에 대해 고찰해 보고자 한다. 

뛰어난 심미안의 소유자로 이름을 떨친 아오야마 지로青山二郎는 「일본의도기」에서 "뛰어난 화가가 미를 그린일은 없다. 뛰어난 시인이 미를 노래한 적은 없다. 그것은 그리는 것이 아니고, 노래해서 얻는 것도 아니다. 미라는 것은 그것을 본 사람의 발견이다. 창작이다. 白洲信哉編 天才青山二郎の眼力 新潮社, p.44."라고 표현했다. 미는 발견이며 창작이라는 말은 개인의 심미안뿐만 아니라 근대국가가 취하는 미학적 관점 에 대해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통적 일본 이미지는 서양의 이미지에 기초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아이러니 하게도 문학이 아니라 미술에서 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내셔널리즘은 일반적으로 미학적인 의식에서 성립한다. 일본 내셔널리즘의 맹아인 에도시대의 국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도 지적·도덕적인 시점(인도나 중국에서 유래하는)에 보다 미학적 관점(모노노 아와레もののあはれ)을 우위에 놓는 것에서 시작했다. 그러나 그것은 당대인들의 자기의식에 불과했다.(중략) 예를 들어 일본의 국학파는 ‘겐지이야기源氏物語’를 칭찬했지만 그것이 해외에서 읽힐 가능성은 없었다. 그에 반해 시각예술이 다른 점은 일본인이 그렇게 생각하기 전에 서양에서 높이 평가되었다는 것이다. 헤겔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것은 '타자의 인지'를 획득한 것이다. 우키요에가 일본에서 인지되었던 것은 유럽에서의 평가 때문이다. (3. 가라타니 고진, 조영일 역 네이션과 미학 2013, p.134)

이러한 '지적·도덕적인 시점보다 미학적인 관점을 우위에 놓기 위해 미에 관한 담론으로 '민예론'을 제창하고 운동으로까지 나아간 미학자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 1889-1961)다. 한편 '모든 예술은 이론이나 지식으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고 예술 감상도 실로 감勘이 작용하지 않으면 이뤄지지 않는다.'며 일상생활 속에서 미를 탐구했던 창작자는 기타오지 로산진(北大路魯山人, 1883-1959)을 들 수 있다. 그는 천재 서예가, 전각가, 화가, 도예가, 요리인, 당대의 신랄한 독설가 미학자, 출판인으로서도 활동했다.

▲ '지적·도덕적인 시점보다 미학적인 관점을 우위에 놓기 위해 미에 관한 담론으로 '민예론'을 제창하고 운동으로까지 나아간 미학자가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悦, 1889-1961)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동경출생 해군소장의 아들로 학습원 초등과, 중등과, 고등과를 거쳐 동경제국대학에서 유럽의 종교철학을 공부했다. 무샤노코지 사네아츠(武者小路実篤), 시가 나오야(志賀直哉), 아리시마 다케오(有島武郎) 등이 참가한 시라카바白樺의 동인이기도 했다. 시라카바白樺는 1910년 창간부터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종간될 데까지 매달 간행되었다. 문학,미술, 철학 등 여러방면의 논문·평론 및 소개 하면서 당시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시라카바白樺를 통해 서양미술을 소개하고 평론했던 종교 철학자 야나기가 민예 개념을 만들고 민예운동을 제창하게 된 것은 아사카와 노리타카(浅川伯教, 1884-1964)와의 만남이 계기가 되었다. 그는 아사카와의 조선백자선물 을 계기로 1916년 중국과 한반도 여행을 한다. 그 여행에서 동생인 다쿠미(1891-1931)를 알게 된다. 아사카와 형제와의 만남과 조선 도자의 미에 대한 개안은 야나기 민예의 출발점이 된다. 로산진은 1910년 서도를 깊이 연구하기 위해 한국에 약 3년간 머물렀다. 그는 글씨뿐만 아니라 고미술과 전각 등 다양한 한국 예술을 흡수해 귀국 후 당대 유수의 서예가이자 전각가로 거듭났다. 그는 또 1928년 옛 한국 도자기 터 조사 및 도기 수집을 위해 한국을 한 달 간 방문 한다. 그 탐사 여행은 조선총독부의 전폭적인 지원 하에 전국적으로 행해졌다. 로산진은 1910년에, 야나기는 6년 후에 조선에 건너간다. 그들은 한국 도자의 아름다움을 통해 조선의 미를 '발견'함으로써 일생을 미에 대한 담론에 천착하게 되는 공통점이 있다. 먼저 로산진의 미학에 대해서 알아보기 전에 야나기의 민예론과 미에 관환 관념을 알아볼 필요가 있을 것 이다.

일전의 원고에서 살펴보았던 게테모노의 정의를 다시 한 번 살펴보도록 하자.사전에 의하면, ➀보통의 물건 및 고가의 정교한 물건에 대하여, 일상에서 이용하는 대중적·향토적이어서 소박한 물품. ↔上手物(じょうてもの). ➁일반과 색다르다고 보여지는 것. 예)-趣味색다른 취미.(広辞苑 第六版 일한사전, 어문학사, 2012, p.1125)로 나와 있다. 일본국어대사전 제 2판日本国 語大辞典第二版에 의하면, 게테모노(下手物げてもの)1.인공을 그다지 더하지 않은 조잡한 싼 물건. 게테.↔죠테 죠테모노(上手物,じょうてもの).➁일반으로부터 사도(邪道, 도리에 어긋나는 부정한 방법 또는 사악한 가르침, 정식이 아닌 방법), 색다르다고 보이는 것. 기묘한 것.(日本国語大辞典第二版 小学館,2003, p.1402)으로 설명 되어 있다. 이 중 야나기가 의도한 게테모노의 의미는 일상에서 이용하는 대중적 향토적인 물건이라는 의미디. 게테모노의 미라는 개념은 야나기가 작성한 일본민예미술관설립취의서.(水尾比呂 志 ,日本民芸美術館設立趣意書,日本民族文化大系6柳宗悦,講談社, 1973, p.260)에서 처음으로 나타난다. 취의서 첫머리에서 '자연이 낳은 건강하고, 소박하고, 생생한 미를 구한다면 민예의 세계로 돌아와야 한다. 우리의 선택은 전적인 미를 목표로 한다. 그러므로 가장 생명이 충만하다고 믿는 것만을 수집한다. (중략) 이 미술관은 잡다한 작품의 취집이 아니라 새로운 미의 표적을 구체적으로 제시하는 바이다. (중략) 대개 죠테(上手)라고 불리는 것은 섬약함으로 흐르고 기교에 빠져 병에 걸린다. 이에 반하여 이름 없는 공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게테(下手)에는 추한 것이 거의 없다" 이러한 게테모노의 미를 상찬했던 야나기는 민예론에서 '초기 다인茶人이 뛰어난 눈으로 발견하여 다도가 가장 중요시하는 대명물大名物로 만든 것은 원래는 민중의 잡기였으며(중략) 버려진 민예 안에야말로 참된 아름다운 것이 무수히 묻혀있다'고 주장한다. 로산진은 그러한 야나기의 '민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지적을 하고 있다. 

“모든 예술은 이지理智로 성취되는 것이 아니다. 어리석게도 너는, 너의 이지로서 예술을 성취하려 하고 있다. 아니면 시대마다 특유한 시대공기, 시류, 시풍을 혼자서 좌우하는 힘이 있다고 꿈꾸는 것인가. 유래가 어떠한 인간이라도 시대의 지배를 벗어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만약 그 오늘날의 공예에서 올바르지 않은 것이 존재한다면 그것은 즉, 오늘날의 시대가 옳지 않은 것이다.”

▲ 요리의 기모노를 요리의 풍취를 아름답게 만들기를 기원한다. 미인에게 좋은 의상을 입혀보고 싶은 마음과 다르지 않다. 로산진의 요리.

예술을 이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며 미에 대한 담론을 이야기하는 것 에 부정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로산진도 1930년대 중반 이 후에는 일본의 아름다움을 나타내는 용어로 '아미雅美'를 주창하며 독창적인 미학적 태도를 보이게 된다. 그 내용은 다음에서 살펴보도록 한다. 로산진은 아래와 같이 민예에 대한 의견을 피력하고 있다. 

“대개 민예품이라는 것은 선택해서 나열해보면 제각각 가벼운 재미가 있지만,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좀처럼 본격적인 것은 없다. 서툰 만화나 시시한 만담 같은 것이 많다. 기술이 불충분해서 또한 표현이 불충분해서 자칫하면 천박해지기 쉽다. 오히려 시시한 축에도 못드는 것이 많다는 게 맞을 것이다. 그런데도 이 구별이 알기 어려운지 자칫하면 옥석이 섞여있어 민예라고만 하면 뭐든지 재미있어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는 아무 가치도 없다. 민예라고 하지만 역시 본격적인 예술적 생명이 요동치고 있는 것이어야 할 것, (중략) 민예라는 것은 뜻밖에 유유히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 것이며 직인이나 전문가 같은 상식적인 사람이 가질 수 없는 소위 초상식적이고 수법이 정해지지 않는 데서 오는 재미가 있다.”

1936년에 발표한 이 「민예조각에 대해서」라는 글에서 민예도 예술적인 생명이 있어야 하며 자유로움을 느끼게 하는 요소를 지녀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민예품의 가치는 예술적으로 높게 평가하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야나기는 공예에 있어서 ‘용미상즉(用美相卽)’이라는 용을 중시한 수공예의 미를 강조했다. 상즉이란 불교용어로서 서로가 보완하는 관계를 의미 한다.

“공예의 미를 결정하는 것은 얼마나 용에 맞게 만들어져있는가 하는 것이다. (중략) 아름다움을 위해 만든 것보다 용을 위해서 만들어진 기(器)가 더 아름답다. 어찌하여 전자보다 후자쪽에 아름다운 것이 많은가? 그것은 성질상 ‘게테모노’가 보다 많은 용도와 결합하기 때문이다.”

▲ 시라카바白樺는 1910년 창간부터 1923년 관동대지진으로 종간될 데까지 매달 간행되었다. 문학,미술, 철학 등 여러방면의 논문·평론 및 소개 하면서 당시 문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시라카바白樺를 통해 서양미술을 소개하고 평론했던 종교 철학자 야나기.

이러한 게테모노에는 많은 용도가 있기에 더욱 아름답다고 주장하는 야나기에 대해서 로산진은 다음과 같이 반박한다.

“자네가 부정하는 죠테모노를 자네가 어느 정도 알고 있는지가 문제 인데, 자네가 말하는 죠테모노는 졸작의 죠테모노이고, 명작 죠테모노를 아직 응시한 적이 없는 듯하다. 본적은 있어도 끝까지 이해 못한 모양으로 (중략) 용도를 벗어나는 공예는 없다라는 자네의 지론은 좋다. 그렇다면 그 용도에는 왕자에게 적용되는 공예, 귀족부자 용도의 공예, 중산무산, 각각의 생활 계급이 있어서 일체 일률적인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이 계급용도를 무시하고, 공예작품을 한 종류 한 모양으로 유행시키려고 바라는 것은 서양의 전제專制인 레닌 같은 위대함이 필요하다. ”

이처럼 로산진이 ‘용’의 내용이 각 계급에 따라 다르다고 날카롭게 지적한 부분은 주목할 가치가 있는 내용이다. 동시에 로산진은 본인은 ‘용’을 매우 중요시함을 여러 번 밝혔다. 그 자신이 도자기를 만들게 된 계기에 대해  ‘요리의 기모노’와도 같은 생활 속의 아름다움을 추구하기 위해서라고 얘기하고 있다.

“어찌 된 일인지 가지고 태어난 미식도락이 자연스레 끊임없는 욕망을 낳아, 아름답게 즐길 수 있는 식기를 욕구한다. 즉 요리의 기모노를 요리의 풍취를 아름답게 만들기를 기원한다. 미인에게 좋은 의상을 입혀보고 싶은 마음과 다르지 않다. 이 요리의 아름다운 옷 으로 풍취를 더 하는 것은 타인은 어떻든 간에 나에게는 바꿀 수 없는 즐거움이다”

그렇다면 야나기의 민예론을 비판했던 로산진이 지향했던 미는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로산진이 지향했던 예술 이념과 미는 ‘아雅’라는 것으로 축약시킬 수 있다. 로산진은 자기가 만드는 도기 혹은 만들어야 할 도기를 스스로 아도雅陶라 불렀다. 이 아雅라고 하는 말에 담은 액센트의 의미는 도예뿐만이 아니라 그의 예술전반의 이념과 성격을 생각할 때 매우 중요하다. 1919년에 고미술점을 열어 대아당예술점大雅堂藝術店이라고 이름 붙였 다. 그는 옛부터 아(雅, みやび)라고 하는 이 말의 풍아風雅, 우미優美, 화려함 (はなやかさ), 고상함(上品) 등의 의미를 좋아하고 동경하여 자기의 예술 이념으로 했다. 로산진의 미학은 와비(わび)나 사비(さび)가 아니라 미야비(みや び)의 미학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본고에서는 기타오지 로산진의 미술관을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론에 대한 비판을 통해 살펴보았다. 로산진은 민예론이 주장하는 게테모노에만 미가 존재하고 죠테모노의 미는 배제하는 것에 대한 모순을 지적하고, 각 계층별의 용이 다른 것에서 오는 모순점을 지적 한다. 또한 감각보다 이론으로 미를 평가하려는 입장 역시 이의를 제기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론의 주된 주장이 물건의 모양이 그 용도에 충실할 때 아름다움이 깃든다는 것이라는 점에서 기타오지 로산진이야 말로 야나기 무네요시의 민예론의 참된 실천자이자 창작자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흔이 teac2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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