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침묵의 다도, 무언의 전위』는 문학, 미술, 사진 등 다양한 예술 분야에서 활약한 아카세가와 겐페이가 센노리큐와 다도라는 깊은 우물에서 길어 올린 예술론이다. 겐페이에게 예술은 다도의 세계가 그러한 것처럼 이성적이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세계다. 언어 너머, 무언의 선상에 존재하며 극소와 축소를 추구한다. 다도가 바로 그런 예술적 사상운동의 실험실이었다는 것이 겐페이의 시선이다.

그는 그런 축소와 극소의 힘을 일본의 미적 감각 전반에서 찾아내면서 그것을 ‘빈핍성貧乏性’이라고 표현한다. 그리고 이러한 미의식은 센노리큐가 구상한 축소의 다실, 다실의 출입문인 니지리구치にじり口, 거리의 벽보, 아스팔트에 생긴 작은 정원 쓰보니와壺庭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말한다. 이러한 미의식이 바로 전위前衛의 시선이며 전위의 감각이라는 것이다. 즉 이미 존재하는 세상의 형식을 무너뜨리고 등장하는 단 한 번뿐인 독창적인 미의식. 그것이 예술의 근원이며 가치라고 본다.

겐페이는 이러한 전위의 시선이 한국에서도 발견할 수 있는 동아시아적 미의식이라고 분석한다. 서유럽화의 흐름, 다시 말해 이상적이고 합리적이며 논리성을 드러내는 문화가 아닌 자신을 자연 안에 숨기는 문화, 소박하고 극소의 미를 추구하는 미의식이 동양 예술이라는 것이다. 그는 예술의 의미를 발견하기 위해 한국을 방문해 전 문화부 장관 이어령, 설치미술가 최재은, 현대미술가 이우환과 만난다. 그리고 그들과의 만남을 통해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황금다실을 창경궁 후원에서, 다실의 출입구인 니지리구치를 한국 양반촌에서 발견하고 그 미 의식의 공통점과 의미를 분석한다.

즉 한국의 도공들이 빚은 소박하고 단순한 이도다완 같은 다기들이야말로 일상에서 외면당한 가치를 예술적 가치로 승화시킨 동양의 예술 감각이라는 것이다. 겐페이는 이 책에서 예술의 거대한 근원이 무엇인지 끝없이 묻는다. 일본의 역사 속에서 다양하게 등장하는 불 완전하고 불균형한 미의식을 예시하는 이유도 서유럽의 미의식에서 벗어나 일그러짐, 어긋남, 비대칭 등 더 작고 소박한 미적 감각에 감응하기 위해서다. 결국 겐페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예술의 순수성이다. 인위적이고 가공된 언어의 잔치, 화려하고 이상적인 형식미가 아닌, 언어를 추월해서 언어를 빠져나가는 언어 너머의 예술, 형식을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형식으로 나아가는 전위의 예술이 예술의 본질에 가장 가깝다고 이야기한다.

이 책 『침묵의 다도, 무언의 전위』는 그저 한 지식인이 풀어놓은 어려운 예술 이론서가 아니다. ‘예술이란 무엇 인가’에 대한 한 예술가의 웅숭깊은 사유의 여정이자, 예술을 향한 한 예술가의 순수한 애정이다. 독자들은 에도시대와 전후 시대를 넘나들고, 일본과 서유럽, 한국을 건너며 펼쳐지는 아카세가와 겐페이의 지적이고 깊이 있는 사유의 여정을 따라가며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해답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정완 옮김. 안그라픽스. 17,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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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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