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란과 호란을 지나며 서서히 스러져가던 조선의 차문화는 대흥사의 승려 초의에 이르러 일거에 그 위상과 진면목을 회복하게 되었다. 하지만 초의의 차는 깊은 산중에서 혼자만의 힘으로 발전하고 완성된 것이 아니다. 다산과 추사, 홍현주와 소치 등 당대의 기라성 같은 학자와 문인, 예술가들과의 교유가 있었기에 초의차가 완성될 수 있었다. 이 책은 초의차의 완성에 직간접적으로 기여한 인물들과 초의가 주고받은 편지를 모아 해설한 책이다. 저자는 최근 발굴된 자료들도 포함하여 이전에는 잘 알려지지 않았던 역사적 사실들도 새로이 밝혀냈다. 초의차는 누구의 어떤 격려와 도움에 힘입어 어떤 형태로 완성되었을까. 그 구체적인 실상과 초의의 폭넓은 교유의 흔적이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편지에 담긴 조선 후기의 차문화와 인물사

편지에는 시대를 막론하고 오간 사람 사이의 사연이 담겨 있기에 개인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가 될 수 있다. 또한 당대 역사의 일면을 볼 수 있게 해줌으로써 미세사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편지란 역사적 사실을 연결해주는 퍼즐로, 사료의 보고(寶庫)라 할 수 있다. 이 편지들 속에는 초의와 교유한 다산 정약용과 추사 김정희를 비롯하여 북학에 가졌던 인물들, 대흥사와 관련이 있는 승려들을 비롯하여, 해남, 전주, 남평 등지의 아전 및 지방관속의 소소한 일상사가 드러난다. 이런 면에서 그들이 초의선사에게 보낸 편지나 시문은 초의 연구에 필수적인 기초 자료일 뿐 아니라 그와 교유했던 편지와 시문 또한 풍속, 사회, 정치, 종교, 문학, 차문화는 물론 인물사를 조명할 수 있는 자료가 된다.

초의와 교유했던 인사들에 관해 밝혀진 역사적 사실들

이 책에는 초의에게 온 95통 중 초의의 폭넓은 교류사뿐 아니라 조선후기의 시대상을 더욱 면밀하게 볼 수 있는 편지들에 집중했다. 불갑사 도영, 안국암 우활, 도선암 성활 등 승려가 보낸 편지에는 1840년경 초의와 표충사 원장직과 관련한 분쟁의 여진을 담고 있어 승직과 관련하여 대흥사 초의와 불갑사 도영, 안국암 우활, 도선암 성활이 대립적인 입장이었음도 드러난다. 특히 이 자료는 조선후기 승직과 관련하여, 승과가 실제 복원되지는 않았지만 묵시적으로 승직이 수행되었다는 방증이다. 이 책의 또 다른 성과는 초의가 사대부들과 교유할 때 차를 선물한 것이 대략 1830년경으로 알려졌지만 이미 1818년 7월 23일에 홍석주가 보낸 편지에서 초의가 홍석주에게 차를 선물한 시기가 1815년경임이 확인하였다는 점이다. 무엇보다, 이 책에 소개될 편지에서는 조선후기 소치 허련(小癡 許鍊)의 본명에 관하여 새로운 사실이 밝혀지기도 하였다. 조선 말기 문신인 오세창은 「근역서화징」에서 “소치의 본명은 유(維)이고 후일 련(鍊)으로 고쳤다”라고 주장하였는데, 1839년 12월 3일 편지에서 소치는 자신의 이름을 “허유 배수(許維 拜手)”라고 씀으로써 오세창의 주장이 타당함을 증명한다. 도서출판 이른아침. 22,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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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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