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이면 10년 전 일이다. 그해 나는 오른쪽 팔 신경이 파열되었다. 높은 온도에 손으로 차작업을 하는 일은 기계가 움직이는 수준의 속도가 필요하다. 해마다 덖음차를 1톤가량 덖어댔으니 팔인들 제대로 남았겠는가. 결국 팔 신경이 파열 되어서 수술을 했다. 덕분에 팔에 흉하게 약 20cm 정도 긴 흉터가 생겼다. 하늘은 나의 차 사랑을 외면하지 않았다. 다시 차를 만들 수 있을 정도로 팔을 쓸 수가 있었기 때문이다.

2010년 7월 27일 날짜로 제목은 < 대숲 아래 뒤란에서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기록되어 있다.

삶이 그러하듯 세상에 끝이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명이 다하는 날도 분명 또 다른 시작일진대..... 생각도 가지가지 입맛도 가지가지 팔만사천가지도 넘는 것이 세상사... 중국 보이차가 이 땅에 판을 치는 이유는 우리나라 차가 맛이 없어서....?????가격이 저렴해서...?????포옴이 나서???????????아무튼 모를 일이다.

끝이 없는 그 일을 끝까지 해 볼 참이다. 깁스를 푼지 며칠되지 않아 오그라들어있는 팔과 손으로 오후 다섯 시 부터 시작해서 저녁 열 시 까지 장장 다섯 시간 동안 덩어리차를 찍었다. 200g 한 덩이로 25편, 숙성과정과 함께 건조 중이다. 잠자리에 들려니 하반신이 마비가 오려고 한다.(1000% 엄살)

올해 생잎 발효차는 다른 해에 비해 전반적으로 그 맛이 순하다. 다른 해에 생잎 발효차는 이듬해 마셔도 목으로 삼키는 일이 부담스러운데 올해는 순 한 맛과 깊은 맛이 동시에 있어서 마실만한 햇 발효차로 진행 되었다. 지난겨울 혹독한 추위, 그리고 봄까지 눈이 내려 냉해 탓도 있을 것이고, 차 잎 수확기에 하루가 멀다 하고 비가 내린탓 등등 있다고 생각한다.

올해는 무조건 산차로 보관하는 것 보다 덩이차를 만들기로 설정 해 놓고 차 만들기를 시작 했다. 덖음차 량을 줄인 탓에 발효차에 정성을 더 할 수 있었다. 혼자 하루에 생잎 20kg 정도가 나의 체력과 정성과 시간이 딱 알맞다. 차를 만드는 사람이면 누구나 그러하듯 좋은 차밭에 좋은 조건을 가진 잎을 보면 욕심을 내기 마련이다. 멀리 의신 마을 높은 지대 찻잎을 40kg 구해서 덩이차를 만들었다. 해마다 금천다원 잎과 우리 밭의 잎으로만 만들었는데 올해는 의신 찻잎을 구해 함께 만들었다. 세 곳 밭의 차맛이 확연하게 구분된다. 채취 하는 날짜와는 관계가 적지만 각각 토양이 다른 곳에서 자란 찻잎의 맛은 뚜렷하게 구분되었다.

각기 다른 맛으로 구분되는 일도 재미스러운 일이다. 몇 해를 두고 더 연구를 해 봐야 하겠지만 세 곳의 밭 중에 가장 뛰어 나는 맛을 지닌 차밭이 어디 라고는 말 못한다. 사람도 그러할까....아니 그러하다... 아니 그러하겠지...

굴곡이 많은 삶을 살아 온 사람은 인생의 깊이가 있을 수도 있고 거꾸로 거칠 수도 있고. 온실속 처럼 안전지대에서 살아 온 사람은 아름다울 수도 있고 조금만 불편한 조건만 발생해도 금방 그 아름다움이 무너질 수도 있고 더욱 빛날 수도 있고, 정해진 것은 없을 것이다. 각기 다른 토양에서 자란 찻잎의 맛이 평소 생각 해 온 관념이 무너진 셈이다. 하지만 올 한해로만 판단하는 일도 성급한 판단이다. 더 두고 볼일이다.

만약에 올해도 내년에도 또 그 내년에도 올해처럼 세 곳의 밭의 차 맛이 좋다라고 느껴지는 일이 한곳으로 몰린다면 차농일지는 다시 써야 한다. 차 농사짓는 기준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 중국의 보이차 맛을 따라 가야 할일은 아니다. 더욱이 토양과 환경이 다른 찻잎으로 말이다. 우리나라 잎으로 우리 토양에 자란 찻잎의 특성을 살려서 잘 만들어 보고 싶을 뿐이다. 마실 수 있는 차...., 마시면 몸에도 마음에도 이로운 차.. 이웃과 가족과 소통의 나눔으로 꽤나 큰 비중을 할 수 있는 차..더욱 더 크게 생각 한다면 이 풍진 세상을 살아가는데 있어서 많은 사람들의 정신세계를 지배 하여 각자의 삶이 풍요로워지는데 한 획을 그을 수 있는 차 ..(너무 거창 한 것일까...^^)그런 차를 만들고 싶다. 옛 성인들의 올 곧은 정신이 전해지는 그런 차를 만들고 싶다.

분명 한 것은 그렇게 좋은 차를 만드는 방법이 잘못되어 마시면 우리의 몸에는 이로움 보다 해로움이 많다는 사실이다. 산차 보다 덩이차가 맛을 내는 것과 보관에도 용이 하다는 결론이 섰고 지금은 덩이가 중국의 병차 흉내를 내고 있지만 모양도 우리 것이라고 말 할 수 있도록 새로운 덩이차 문화로 도전해 보고 싶다. 열심히 노력해서...^^주위를 돌아보면 많을 것이다..재미나는 모양이 ... 맛도 모양도 좋은 그런 차...^^

10년 전 그 나이에 쓴 기록을 보면서 빙그레 웃는다. 그때나 자금이나 나는 내가 참 예뻐 보인다. 그런 이유로 나의 발효차가 마로단차 라는 이름을 가지게 되었다. 그동안 마로단차의 포장 박스가 없어서 오동나무박스에 수작업으로 스티커 부쳐 포장해왔다. 어제 처음으로 오백 개가 제작되어 도착했다. 나의 보라색 사랑을 차통에 입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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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다연 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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