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컷, 36컷짜리 필름을 장전하던 카메라에서 디지털 카메라로, 또다시 스마트폰으로 바뀐 시대를 지나왔다. 자연스럽게 사진은 특별한 날을 기념하기 위한 용도에서 일상의 모든 것을 기록하는 용도로 쓰임새가 바뀌었다. 사진은 이제 언어가 되어 우리의 이야기를 전달하는 일상의 소통 수단이 된 것이다. 하지만 사진이 일상화될수록 ‘좋은 사진’이 무엇인지에 대한 기준은 모호해지기만 했다. 『사진을 읽어 드립니다』는 단순히 사진을 설명하는 책이 아니라 사진이 왜 우리에게 필요하며, 사진에 담긴 이야기를 어떻게 읽어야 할지 보여 주는 안내서와 같다.

이 모든 이야기는 미국과 멕시코 국경에서 촬영한 ‘캐러밴 모녀’ 사진으로 전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은 한국인 로이터 통신 사진 기자로부터 나왔다. 2019년 ‘로이터 통신 올해의 사진’ 수상, ‘POYI 국제보도사진전’ 등에서 상을 받고 활발히 활동 중인 저자는 현장이 아니라면 어디서도 겪을 수 없는 유일무이한 경험담과 함께 사진의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이야기를 펼친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거론할 때면 늘 빠지지 않는 ‘만삭의 위안부’ 사진은 저자가 직접 취재한 중국의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들의 이야기와 함께 우리를 숙연하게 만들고, 전설적인 종군 사진가 로버트 카파의 대표작에 대한 미심쩍은 의혹들은 저자와 같은 로이터 통신에 근무하던 동료 미국인 사진 기자의 증언으로 한층 더 생생해진다.

이 책은 사진의 역사를 시간순으로 나열하지도 않았고, 이론을 학술적으로 설명한 책도 아니다. 단지 어디선가 본 적 있는 사진들 속의 이야기를 쫓아가다 보면 사진의 역사를 이해하게 되고, 사진이 얼마나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를 깨닫게 되는 책이다. 이것은 늘 현재 진행형의 사진을 다루고 있는 저자의 힘이기도 하다. 오래된 사진에는 이야기가 있고, 그 이야기는 그대로 역사가 된다. 그리고 이는 지금의 사진에도 적용된다.

이미 잘 알려진 사진이지만 정작 우리가 몰랐던 흥미진진한 이야기들이 이 책에는 가득하다. 사진이 발명된 이후 촬영된 사진 속 아이들은 한결같이 굳은 표정이거나 잠든 모습이다. 이러한 사진들의 대다수가 죽은 아이들을 찍은 것이라면 그 안에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역시나 사진이 대중화되기 전인 19세기에 유럽과 미국에서는 심령사진이 유행했는데, 죽은 사람의 영혼이 찍힌 사진은 사랑하는 가족을 잃은 사람들에게 큰 위안이 되곤 했다고 한다. 심지어 미국 대통령 링컨의 영혼까지 담은 사진은 요즘의 스타 마케팅처럼 심령사진의 인기를 한껏 끌어올렸다. 더불어 저자가 직접 취재한 일본 이가 마을 닌자 사진의 비밀까지 이 책에는 과거와 현재의 사진들이 살아 숨 쉬며 이야기를 전해 준다.

일상의 모든 것을 사진으로 남기는 요즘이지만, 그렇기에 더 사진의 가치에 무관심해졌는지도 모른다. 잠시 숨을 고르고 사진에 남아 있는 흔적들을 쫓아가다 보면 결국 사진 너머의 이야기에 주목하게 될 것이고, 보기 좋은 사진 수백 장보다 이야기가 담긴 사진 한 장의 중요성을 실감하게 될 것이다. 김경훈. 시공아트. 1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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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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