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는 병도 많고 치료제도 많다. 그러나 같은 병명이라고 해도 의사의 처방이 다를 수도 있고 약이 같다고 해서 병을 모든 사람이 다 낫는다는 근거도 없다. 이와 같이 차를 만드는 과정이나 차를 알아가는 지식도 사람마다 느끼는 것도 천차만별이다. 그 무엇도 단정 지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따로 차에 대한 용어나 차에 대한 효능을 과학적이나 의학적으로 배워 본 적이 없다.

한때 차에 대한 이론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스님정도 되면 차에 대한 이론을 정립해 내 놓아야 한다.”고 주문 해 온 적이 있었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산골 묵 만드는 할머니가 무슨 이론이 있겠는가, 영감님하고 말다툼이라도 하면 묵 끓인 솥에 물 두어 바가지 더 부을 수 도 있고 덜 부을 수도 있다. 그날그날 기분 나는 대로 만들지 무슨 이론이 필요하겠어요. 이론은 학문 논하기 좋아하는 학자들에게나 필요하지 묵 만드는 할머니 마음으로 차를 덖는 나에게 이론은 하나도 필요하지 않습니다.”

차의 주요성분인 폴리페놀, 카테킨, 타닌에 대하여 나는 깊이 알고 싶거나 알아야 할 이유도 없다고 생각한다. 매일 먹는 밥에 대하여 성분을 알고 먹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는가. 그러나 내가 아는 것 한 가지는 있다. 우리나라에서 자라고 있는 소엽 종은 분명 덖음 녹차용이라고 하는데는 부정하지 않는다. 찻잎 자라는 시기와 크기에 따라 우전, 세작, 중작 혹은 대작으로 이름이 분류되어 있지만 이왕이면 어린 우전이나 세작의 잎으로 만든 차를 나는 더 선호하는 편이다 어릴수록 차맛이 부드럽고 순한 탓도 있다. 중작이나 대작으로 녹차를 만들면 타닌성분이 많아 작설차로서는 그 맛과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나의 견해역시 전부다 맞다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이유는 내가 중작으로 몇 해 봄 동안 생잎 수백kg를 덖어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주변에 우스갯소리로 중작 잎으로 우전 맛을 낼 수 있다고 자랑질을 했다. 그만큼 큰 중작 잎으로 우전 맛을 내기까지는 유념과 마지막 가향 작업이 작용한다. 우전이나 세작 잎으로 덖고 비비는 과정보다 수고로움은 몇 갑절이 된다. 그렇다면 무우 시레기 줄기같이 자란 대작은 어떻게 작설차로 만들 수 있을까. 세작도 끝나고 중작도 끝난 시기에도 아직 부드러운 대작 잎은 농민들은 포기 할 수 없다.

누군가 우리나라 소엽 종으로는 황차니 홍차니 하는 발효차 종류에 부적합하다고 표현 한 글을 읽은 적이 있었다. 그 이유가 중국 대엽종 찻잎의 일조량 때문이라고 했다. 나 역시도 어린잎으로 만든 발효차맛에 대하여 큰 매력을 못 느끼고 있다. 그러나 일조량이 많은 대작으로 발효차를 만들었을 때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우리나라 소엽종의 대작 잎이 나올 때면 오월 중순이 지나 하순이 되는 시기이다. 물론 내가 찻잎을 채취하는 백운산 자락 금천 계곡 기준이다. 오월 하순의 뜨거운 햇볕은 사람도 익을 정도다. 뜨거운 햇볕의 일조량을 받은 대작 잎은 타닌의 성분이 더욱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덖음차 재료로 사용하기에는 매우 부적합하다. 그러나 나는 그 잎을 포기하지 않았다.

왜 한국 차인들이 중국 보이차 맛에 길들여지면 우리나라 차를 마시려고 하지 않을까 하는 의문을 풀기위해 중국을 가기로 했다. 중국차를 연구하기 위해 세계에서 가장 크다는 중국 광저우 방촌 차 시장에서 무작정 방문했다. 차가 생산되는 운남성 현지보다 차시장을 택한 이유는 생산 된 보이차가 그곳에 집결하기 때문에 일일이 만드는 곳을 찾아다니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었다. 그늘에 앉아서 바라 본 방촌 차 시장의 풍경의 특징은 차를 사기위해 돌아다니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자들이라는 것이었다. 손에 한 두통(1통에 일곱편)을 들고 다니는 무리들 표정을 보는 순간 나는 무릎을 쳤다. 맞아 바로 이것이야. 차는 기호식품이야 그 기호식품을 사람마다 다르게 선택 한 거야. 또한 차는 기다림이야. 분명해 내 생각이 틀리지는 않을 거야. 대단한 발견을 한것 같은 기분으로 한국에 돌아와 <마로단차>를 만들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이름이 <마로단차>는 아니었다. 그냥 발효차라는 이름으로 생산하다가 마로단차란 이름으로 명명했다.

10여년이 지나고 나니 내 생각은 적중했다. 내가 만든 발효차가 어떤 인연으로 K은행 감사실 직원들에게 알려지게 되었다. 인연을 맺은 그분은 “보이차를 대처할 만한 우리나라 차를 만날 수 가 없었는데 이제 만 난 것 같아요." 하면서 아침마다 내가 만든 < 마로단차>를 우려 준다고 했다. 그리고 몇 년 간을 일 년치 마실 차를 한꺼번에 구입해줬다. 그곳에서 근무하던 사람이 지점으로 나가면서 또 다른 직원에게 알려지고 연결이 되어 지금까지 마로단차를 애음해주고 있다.

차와 커피 담배는 중독성이 강한 식품이다. 부드러운 차나 커피에 길들여진 사람은 부드러운 것만 찾고, 강한 맛 커피나 차에 길들여진 사람에게는 강한 것만 찾는다. 대구 지인의 차실에서 얻어 마신 대홍포 맛은 도저히 목으로 넘길 수 없는 강하고 거친 맛이었다. 그러나 그는 맛있다며 종일 마시고도 아무렇지 않는 듯 마시고 또 마셨다. 나는 위가 많이 아팠던 기억이 있다. 나에게 최초로 차를 알게 해준 어른스님을 찾아 뵐 때마다 나에게 팽주를 시켰다. 스님은 나에게 차를 순하게 우려 낼 것을 주문하셨다. 그래서 인지 나는 순하고 부드러운 맛의 차만 찾는다. 대작의 큰 잎으로 만든 <마로단차> 는 떫거나 독하게 강한 맛이 없다. 오히려 맑고 단맛이 깊은 차다. 그것은 세월 탓이다. 도전도 해보지 않고 무조건 우리나라 찻잎은 발효차를 만들면 안 된다는 표현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차를 만드는데 이건 맞고 저건 틀렸다고 누가 만들어 놓은 이론이란 말인가. 덖음 차만이 우리의 전통차라고 주장 할 수 있단 말인가. 퓨전이라는 단어가 난무하는 이 시대에 다양한 방법의 차가 나와서 우리나라 차 농사들의 살림살이에 보탬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나물을 삶을 때도 미나리, 시금치, 쑥부쟁이, 어린취나물 과 억센 취나물의 삶을 때 무르기가 달라야 나물의 제 맛을 내는 법이다. 차 잎도 그렇지 않겠는가. 우전 같이 어린잎의 용도가 있고, 대작같이 큰 잎의 용도가 분명히 있다. 우리나라 찻잎으로 황차라고 불리는 발효차를 만드는 것은 부적합하다고 할 것은 아니다. 중국의 대엽종의 잎 중에 아주 어린 새순 첫물로 만든 보이차는 맑고 향기롭고 단 맛도 좋다. 대작 잎으로 만든 보이차는 청병일 경우에 마시기가 참 부담스러운 강한 맛이 많다. 중국차 중에 <복전> 이라고 하는 차는 크고 거친 잎으로 만들었다. 차를 제다한지 2.30년 되었다면 과연 마실 수 있을까 하고 의심해 본다. 우리나라 대작 큰 잎으로 발효차를 만들어 낸다면 그리고 삼사년 시간을 기다리고 얻을 수 있다면 보이차의 강한 맛을 쫒지 않아도 충분 하다는 생각이다. 또 어린잎으로 만든 발효차에 대하여 생각을 달리 할 수도 있지 않을까. 나는 분명히 밝힌다. 우전, 세작, 중작까지는 덖음차를 만들고 대작으로는 발효차를 만들어 본다면 중국의 보이차를 이겨 낼 수 있다는 확신이 있다. 이것 역시 차인들과 차를 만들어 내는 사람과 정부차원에서 생각을 맞댄다면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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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로다연 법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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