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속초에 여행 왔습니다. 아침 눈을 뜨자마자 커텐을 여니 유리창을 자욱하게 덮은 성에가 바깥의 온도를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은 차가 익숙하지 않을 나의 동행을 위해 가장 무난할 차로 골라왔습니다. 입에 맞아야 할텐데요.

향香-

소나무들에 둘러싸여있는데, 방안에서도 나무향이 솔솔 피어나고 있습니다. 향이 은은합니다. 저 멀리 바닷바람에 젖은 굽어진 소나무나, 파도에 닳아가는 서글픈 바위의 아득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습니다.

_ 미味

보이차 특유의 까끌한 느낌 위로 미끄덩한 막이 하나가 더 있습니다. 그래서 향도 맛도 정말 부드럽습니다. 단맛도 쓴맛도 크게 튀지 않는 목질맛, 이 평범성. 커피처럼 진한 탕색에 끝없이 맹맹한 반전의 맛, 그 평범한 맛 그대로 열댓번 우려마신 뒤에서야 탕색이 맑아지기 시작합니다. 나의 동행, 무슨 맛인지 모르겠다면서 주는 대로 잘 마시니 흐뭇합니다. 어떨 땐 신선함이나 특별함보다도 평범함이 주는 안정감에 더 감동하는 것 같습니다. 차茶도, 인연缘도 말입니다.

하루의 여정을 위해 서너번 더 우려 보온병 하나에 가득 담습니다. 둘이 함께 매운탕 후식으로도 마시고, 파도소리 들으면서도 호호 불어 마실 생각에 벌써부터 배가 든든합니다. 해가 점점 떠올라 이제 손등에 닿는 햇빛이 따스합니다. 창가 서리도 거의 다 사라졌으니, 길을 나서보겠습니다.

글쓴이 김규원 기자는 조향사 일을 하며 차에 관한 다양한 일도 함께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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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규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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